디자인 소송 맞섰던 두 브랜드의 역사적인 협업

2000년 뉴욕에서 생겨난 지 6년 된 신생 스케이트 보드 브랜드 슈프림은 루이비통의 모노그램과 비슷한 디자인의 액세서리들을 발매했다. 모노그램에 슈프림의 S를 추가한 스케이트 보드는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루이비통은 이러한 제품이 ‘패러디’나 ‘오마주’가 아니고 도용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루이비통의 입장은 강경했다. 발매된 모든 제품을 불태우라고 말했다. 슈프림은 소송 때문에 제품을 리콜할 수 밖에 없었다.

2017년 6월 30일. 17년 전 서로 싸우던 두 브랜드가 역사적인 콜라보레이션을 발매했다. 스트리트 패션계의 최고봉인 슈프림과 명품 브랜드의 최고봉인 루이비통이 협업을 한 제품들은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LA에서는 아트 디스트릭트에 팝업 스토어가 열리면서 판매를 하고 있다. 뉴욕에서는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서 팝업스토어 자체가 무산되는 등 갖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팝업 스토어의 정확한 주소는 발매 직전까지 비밀로 하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는 방식으로 철통보안 속에 발매가 이뤄졌다.

광풍 몰고온 팝업 스토어

직접 찾아본 LA 팝업스토어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긴 줄에 둘러싸여 있었다. 100명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이것도 30여 명의 경찰들이 통제를 해 짧아진 것이었다. 발매 전 날 나눠준 ‘티켓’을 받지 못한 사람은 줄조차 설 수 없었다. 경찰들은 줄을 서는 행위 자체가 ‘불법침입’이 될 수 있다며 대부분의 사람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매장 주변은 모든 종류의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으며 멀리서 상황을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말로 ‘길바닥에서 먹고 자면서’ 제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앤드류(23, 가명)는 “이걸 사려고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왔다”라며 “만 30시간 이상을 이곳에서 보내니 꼴이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운 좋게도 제품을 사게 된 사람들은 즉석에서 물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테드(27, 가명)는 5000달러를 주고 10여 개의 제품을 샀다. 체인이 달린 지갑과 카드 지갑 등이었다. 그는 즉석에서 한 중년 여성에게 카드지갑을 800달러에 판매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한 중년 여성은 샌디에고에서부터 1시간 반을 운전해서 왔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꼭 선물로 주고 싶었다면서 그 자리에서 현금을 내고 제품을 사갔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800달러에 팔린 지갑의 정식 발매가는 300달러였다. 그는 오늘 산 물품으로 최소 1만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5000달러 이상의 이익이다.

바로 옆에서 지갑을 판매하고 있던 제이슨(20, 가명)은 가장 먼저 티켓을 받고 줄을 선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줄을 서고 있는 동안 한 사람이 다가와서 매장에 들어간 뒤 자기가 원하는 후디를 두 개 사다주면 그 자리에서 3000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해서 바로 현금을 받았다고 한다. 제이슨은 “나한테 돈을 준 사람은 3000달러를 내도 이익이다. 정가 900달러의 후디가 5000달러에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는 재킷 하나에 1만 달러가 넘는 가격이 붙어있기도 하다.

source: louisvuitton.com

경계 허무는 명품과 스트리트 패션 

대체 왜 이런 엄청난 ‘광풍’이 불고 있는 것인가? 물론 최고의 브랜드 둘이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것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현상을 들여다보면 명품으로 대표되는 ‘하이패션’과 힙합을 메인 테마로 한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최근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셀레브러티들을 꼽으라면 모두 래퍼들이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래퍼 칸예 웨스트가 아디다스와 협업해서 발매한 신발 ‘이지 부스트’는 정식 발매가가 220달러지만 발매 때 추첨을 통해서 구매하지 못하면 1000달러 정도를 주고 사야만 한다. 크리스찬 디올의 모델로 활동 중인 래퍼 에이샙 라키는 패션위크의 단골 손님이며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스트리트 패션의 올라간 위상을 반증하는 것이다.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는 “이제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는 사라졌다”면서 슈프림과의 협업 이유를 밝혔다. 17년 전 슈프림과 루이비통이 소송전을 벌일 때만 해도 명품과 스케이트 보드는 섞일 수 없었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이제 패션의 경계는 사라졌다. 2017년 6월 30일 경계가 사라진 패션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팝업스토어(833 East 3rd Street CA 90013)는 일요일까지 열릴 예정이지만 미리 티켓을 받은 사람만 구매를 할 수 있다.

슈프림은? 1994년 생겨난 슈프림은 스케이트 보드를 테마로 한 브랜드다. 아이들의 놀이처럼 생각됐던 스케이트 보드 문화를 주류사회로 이끌어 올린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의 작은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디자인과 한정판 생산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쑥쑥 커왔다. 이제는 발매일인 목요일만 되면 매장 앞에서 밤새 기다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핫한 브랜드’가 됐다.


취재 조원희 기자 / 영상 송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