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회 아카데미 어워드는 문라이트의 작품상 수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상을 아쉽게 놓친 영화들도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빛을 내고 있다. 라라랜드를 비롯해 작품상 후보에 오른 9개 모든 영화들의 작품성은 그 어느 해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의 리뷰를 통해서 2016년 의 영화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시간의 관념을 뒤집다

선형과 원형

영화 어라이벌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간다. 우리는 종종 이런 표현을 쓴다.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간다는 의미다. 이런 표현은 우리가 시간을 선형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처음이 있고 끝이 있고 그 사이를 잇는 선이 있으며 시간이란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 선을 따라서 흘러간다. 마치 강물처럼. 우리가 흔하게 쓰는 표현을 통해 우리가 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시간을 선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서양문명의 관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양문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에서는 태어나서 천국 혹은 지옥에 가기까지 인간의 삶이 유한함을 강조한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끝나고 난 이후 또 다른 영원한 삶이 있을 거라고 사후세계를 설명한다.

동양문명의 시간에 대한 관점은 좀 다르다. 선형이 아니라 원형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말한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윤회가 이러한 관점을 대변한다. 전생에 따라서 다시 태어나는 식으로 끝없이 시간이 이어진다는 것이 사후세계에 대한 설명이다. 시간이 순환한다.

‘어라이벌(한국개봉명 컨택트)’은 우리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시간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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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의 소통

영화는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의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짧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호숫가에 있는 루이스의 집이 미술작품처럼 등장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삶과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들을 펼쳐낸다. 이것보다 효과적으로 나타내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압축적인 장면들이다. 5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병상에 누워 있는 루이스의 딸을 보는 순간 뭉클해진다.

바로 그 이후부터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된다. 갑작스럽게 외계인이 지구에 12개의 우주선을 보낸다. 도대체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모든 것은 의문투성이다.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외계인들의 말을 해석해 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과 함께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주선에서 외계인과 마주치게 된 루이스는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서 보호장구를 모두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그들과 소통하려 노력한다. 두꺼운 유리창 뒤에 있는 외계인들은 지구인과 전혀 다른 소통방식을 구사한다. 알 수 없는 물질을 내뿜으면 둥그런 모양의 글씨가 된다. 외계의 언어는 지구의 언어와 완전히 다르다.

원형이다. 그들은 지구인처럼 처음과 끝이 명확하게 표기되는 문자를 쓰지 않는다. 선 위에 줄을 맞춰서 주욱 쓰다가 마침표를 찍는 일이 없다. 어디가 문장의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루이스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해석에 어려움을 겪지만 열린 마음을 통해서 소통을 하려 노력하고 조금씩 외계인의 문자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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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의식을 지배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의식을 반영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시간에 대한 선형적 인식은 흘러간다는 표현에서 보인다. 하지만 어라이벌은 반대의 역설을 보여준다. 루이스는 영화의 중간에 호주 원주민의 일화에 대해 얘기한다.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은 18세기에 호주에 도착해 주머니가 있는 동물의 이름을 물었다. 원주민은 ‘잘 모르겠다’는 의미로 “캥거루”라고 답했고 이후에 캥거루는 동물의 이름이 됐다.

루이스는 “외계인과 게임으로 소통하면 그들은 ‘적’ ‘승리’ ‘패배’ 등의 개념만 배우게 될 것이고, 우리가 그들에게 망치를 주면 그들 눈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언어라는 형식이 사람 혹은 외계인의 인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야기다. 루이스의 이런 통찰은 정확히 맞았다. 루이스는 외계의 언어를 배움으로서 새로운 인식을 지니게 된다.

외계 언어를 배워 나가면서 루이스에게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의 딸에 대한 영상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딸과 함께한 추억들이 마치 현실인 것과 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이 영상들과 현실의 경계는 조금씩 지워져 간다. 무엇이 현실인가를 구분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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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반전

이것이 영화의 핵심이며 반전의 요소다. 그가 보는 영상들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고 미래의 영상들이다. 환영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미래와 현재를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미래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서로 다른 시간대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원형의 글씨를 배우고 나서 루이스의 시간감각은 선형에서 벗어난다. 처음과 끝이 없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모든 순간을 인지하게 된다.

루이스는 이러한 능력을 통해서 일촉즉발까지 간 외계인과 인류와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중재해 낸다.

시간은 항상 영화의 가장 매혹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엇갈리는 시간은 관객을 현혹시킨다. 멜로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터널 선샤인’이 대표적인 예다. 주인공의 과거 기억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무너져가는 세계라는 매혹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터널 선샤인’과 ‘어라이벌’은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가는 일반적인 영화의 작법에 반기를 든 작품이다. 공통점이라면 당연히 영화 초반부에 나온 사건이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의 뒷통수를 강하게 친다는 점일 것이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배치해서 상식을 파괴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새롭다. 지적인 자극을 가져다 준다. 어라이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어 버린다. 시간이 비선형적인 것이라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흘러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가 아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인식할 수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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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알게 된 자의 슬픔

딜레마

영화 후반에 모든 미래를 알게 된 루이스는 이안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모두 알고 있어도 현재 내리는 판단에 변함이 없을지를. 그는 이안과 결혼했다 헤어지고 딸이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가슴 아픈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있는 감정대로 그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것인지를 묻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는 많은 예술작품들은 한가지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쉽게 대답하기 힘든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쉽게 대답하기 힘든 딜레마가 작품 내에 녹아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게 된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여운이 남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어라이벌은 확실히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한가지의 질문이 가슴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과연 당신은 가슴 아픈 미래를 알고도 그 모든 것을 사랑할 것인가?”

드니 빌뇌브 감독은 항상 자신의 작품에 이런 윤리적인 딜레마를 포함시켰다. 전작인 ‘프리즈너스’에서는 딸이 납치된 아버지의 감정을 내밀하게 그려냈다. 눈앞에 심증이 가는 범인이 있음에도 물증이 없어서 잡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가장 예민한 ‘자식문제’이기에 이성을 잃고 악마가 되어가는 모습은 무섭지만 동시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카리오’에서는 마약 카르텔이라는 거대한 악을 잡기 위해서 불법적인 방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FBI 수사관의 내면의 갈등이 묘사된다. 악행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흐릿한 선과 악의 관계가 영화를 더욱 인상 깊게 만들어준다.

빌뇌브 감독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미래를 알아버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속에 루이스는 슬픈 미래를 알고서도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사랑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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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영화의 말미에는 영화 초반부에 나왔던 루이스의 집이 다시 비춰진다. 마치 시작은 끝과 연결돼 있다고 말하듯. 처음과 끝을 구분하기 힘들다. 루이스는 딸의 이름을 ‘한나’(Hannah)로 짓는다. 이름의 철자를 거꾸로 해도 같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처음과 끝이 없다. 영화는 메시지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원형’을 강조하면서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우리도 모르는 순간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그 질문에 몰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한나의 짧은 삶의 순간들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그렇게 애틋하고 가슴 아픈 미래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마치 시간이 원형으로 ‘흘러가듯이’ 질문이 영화 속을 내내 맴돈다.


디지털부 조원희 기자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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