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존 조에게 영화스타트렉 비욘드(Star Trek Beyond)’는 특별하다. 2009년 작스타트렉 2013년 작스타트렉 인 투 다크니스에 이어 3번째로 출연하는스타트렉시리즈이긴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연기하는 엔터프라이즈 호의 일등 항해사 줄루 캐릭터 비중이 대폭 늘어나기도 했지만,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줄루가 게이였다는 설정이 드러나며 더욱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할리우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다양성 논란과 관련,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의 대표격인 존 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던 참이다.

영화 개봉에 맞춰 베벌리힐스 포시즌 호텔에서 이틀에 걸쳐 존 조를 직접 만나 여러 이슈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존 조는 지난 5월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던존 조 주연놀이 (#StarringJohnCho·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에 존 조의 얼굴을 합성해 공유하는 문화 현상)에 대해서도 직접 입을 열었다.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로서의 신념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차갑고 딱딱해 보인다는 이미지와 편견 뒤엔, 이토록 치열하게 노력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할리우드의 개척해 온 그의 땀방울과 고민의 흔적이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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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전작 두 편에 비해 캐릭터 간의 호흡이 각별히 돋보인다. 줄루 캐릭터 역시 훨씬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에 더 치중한 스토리라 그런 것 같다. 은하계를 지킨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서로를 위해 싸우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자 애쓰는 모습이 관객들의 공감을 사는 듯 하다. 1편부터 스카티 역으로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춰왔던 사이먼 페그가 각본을 쓴 덕도 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친한 사이라, 각 캐릭터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상황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줬다. 줄루의 가족이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관객들이 줄루에게 더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편집되긴 했지만, 원래는 줄루가 우후라(조 샐다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이 있었다. 줄루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가족을 희생시켰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단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영화에선 볼 수 없지만, ‘스타트렉 비욘드가 어떻게 캐릭터를 발전시키고자 했는지 그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Left to right: John Cho plays Sulu, Anton Yelchin plays Chekov, Karl Urban plays Bones, Chris Pine plays Kirk, Zachary Quinto plays Spock and Simon Pegg plays Scotty in Star Trek Beyond from Paramount Pictures, Skydance, Bad Robot, Sneaky Shark and Perfect Storm Entertainment

저스틴 린 감독과는 2002베터 럭 투모로이후 14년 만에 재회했다.

우리 둘 다 저예산 인디 영화로 시작한 사람들인데, 이렇게 큰 스케일의 영화를 통해 다시 만났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물론 그 사이 저스틴은 나보다 훨씬 성공했지만, 둘 다 모든 불리함을 이겨내며 버티고 성장해 여기까지 왔다는 게 나로선 큰 의미가 있다.”

– ‘스타트렉스타트렉 인 투 다크니스를 연출했던 J·J 에이브럼스 감독과 저스틴 린 감독을 비교한다면.

아주 다르다. J.J는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이다. 언제나 현장의 최고스타. 반면 저스틴은 항상 뒷자리에 있는 걸 즐기고, 굉장히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이다. 카메라 워킹에 있어서는 따를 자가 없는 천재이기도 하다. J.J보다스타트렉시리즈에 대한 팬 심도 큰 것 같다. 물론 둘 다 창의력이나 일에 대한 열정, 자신감, 몰입도는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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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베터 럭 투머로’에서 처음 만났던 존 조와 저스틴 린 감독은 이번 ‘스타트렉 비욘드’ 로 반갑게 재회했다.
스타트렉 비욘드 - 더그 정
‘스타트렉 비욘드’의 각본을 쓴 것은 물론 존 조가 연기한 줄루의 동성남편 역으로도 등장한 한인 더그 정 작가

한인 더그 정 작가가 사이먼 페그와 함께 각본을 맡았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났는데, 이젠 정말 친한 사이가 됐다. 같은 한국인이다 보니, 다른 아시안 아메리칸들보다 훨씬 즉각적이고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현장에서 아시안은 나 혼자였는데, 이번엔 저스틴 린 감독뿐 아니라 더그 정까지 셋이 하나가 돼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데서 차원이 다른 기쁨을 느꼈다.”

더그 정과 동성 부부 연기까지 소화했다.

줄루 캐릭터가 게이로 등장하게 되리란 건 사이먼 페그가 각본 작업 초기에 미리 귀띔해 줘 알고 있었다. 기왕이면 아시안 남성으로 설정해달라고 부탁한 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게이 캐릭터를 연기할 아시안 배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촬영지가 (이슬람 국가인) 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였다 보니, 더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더그였다. 전문 연기자가 아니라 약간의 코칭이 필요했지만, 썩 잘 해낸 듯하다.”

줄루가 게이 캐릭터라는 사실은스타워즈시리즈에서 전체에서 처음으로 밝혀지는 내용이다.

다른 시대로 설정돼 있긴 하지만, 오리지널스타트렉시리즈에서 조지 다케이가 연기한 줄루는 이성애자인 걸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소설 버전에는, 줄루가 여성과 아이를 낳았다는 내용이 들어있기도 하다. 우리가 리부트한스타트렉의 세계에선 줄루가 처음부터 게이였다는 설정이고, 이번에야 그 사실이 소개됐을 뿐이다. 다른스타트렉스토리에선 줄루가 이성애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혹시라도 성 정체성이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질까 잠시 우려하기도 했다. 또 아시안 남성을 여성화해 희화시키는 할리우드의 못된 관습을 반복하는 듯한 인상을 줄까봐도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별 문제없이 올바르게 묘사된 것 같아 다행이다.”

조지 다케이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던데.

조지 다케이는 이성애자 캐릭터를 연기한 게이 남성이고, 나는 아니다. 나는 게이 역사를 간접적으로 공부했을 뿐이지만, 조지 다케이는 직접 경험하고 살아온 사람이다. 때문에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보다 조심스럽게, 민감하게 접근하는 게 옳다고 느꼈고, 당연히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또 혹시나 조지가 그가 게이란 사실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용한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나름대로 그의 입장에서 걱정되는 부분을 이야기해 줘 고마웠다. 나 뿐만 아니라 저스틴 린 감독도 조지 다케이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

LAS VEGAS, NV - AUGUST 14: Actors John Cho (L) and George Takei attend Day 4 of the Official Star Trek Convention at the Rio Las Vegas Hotel & Casino on August 14, 2011 in Las Vegas, Nevada. (Photo by David Livingston/Getty Images)
존 조는 오리지널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줄루 역을 맡았던 조지 다케이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밝혔다.

스타트렉 비욘드 - 존조 조지 다케이

할리우드에서 인종적 다양성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로서, 이를 지켜보는 느낌이 어떤가.

복합적 감정이 든다. 이런 논쟁이 있을 때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발전해 왔는가를 돌아보는 동시에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상황이 훨씬 좋아지고 있어 기쁘기도 하지만, 우린 이보다 한층 더 높은 곳에서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어서 빨리 이런 논쟁이 필요없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 필요할 때까지는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우린 아직도 충분히 화내지도, 따지지도, 필요한 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어지간해선 나서지 않으려는 아시안 특유의 문화적, 정서적 이유도 있다. 나 역시 아직도 부당한 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데 익숙지 않다. 하지만 계속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할리우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교, 직장 등 우리의 모든 일상 속에서 부당한 처우엔 반대하고 원하는 바를 당당히 외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화 속 아시안들의 지위는, 크게 보면 현대 사회 속 우리의 위치를 반영하는 척도다. 할리우드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함께 노력해 세상을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같은 맥락에서, ‘존 조 놀이(#StarringJohnCho)’를 지켜보는 심경은 어땠나.

처음엔 약간 황당하고 겁이 나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나를 동정하는 건가… 난 꽤 잘 해오고 있었던 것 같은데…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곧 이게에 관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난 그저 창구가 됐을 뿐이고, 이를 통해 건전한 토론이 시작될 수 있었단 사실에 기쁘고 감사했다. 물론 그 방식 또한 아주 영리하고 재미나 기분도 좋았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한인 배우들이 많이 늘었다. 그들의 활동을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는지.

물론이다. 배우들 뿐 아니라 작가, 저널리스트, 정치인 등 전방위에서 활약하는 한인들에게 늘 관심을 갖고 있다.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미 당시 백악관 만찬에 초대된 적이 있었는데,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해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이 나의 활동을 지켜봐 주고 있단 사실을 알았다.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한인들끼리 알게 모르게 서로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게 정말 뿌듯한 일 아닌가.” 

FILE - In this July 7, 2016 file photo, actor John Cho arrives at the premier of "Star Trek Beyond" in Sydney, Australia. Cho portrays Hikaru Sulu in the film, opening in U.S. theaters on July 22 (AP Photo/Rob Griffith, File)
지난 7월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스타트렉 비욘드’ 프리미어 현장의 존 조

Actor John Cho poses for a photo with a fan as he walks the red carpet during the premier of "Star Trek Beyond" in Sydney, Australia, Thursday, July 7, 2016. (AP Photo/Rob Griffith)

Actor John Cho poses for photographers upon arrival at the premiere of the film 'Star Trek Beyond' in London, Tuesday, July 12, 2016. (Photo by Joel Ryan/Invision/AP)
영국 런던에서 열린 ‘스타트렉 비욘드’ 프리미어에 참가해 레드카펫을 밟은 배우 존 조. [AP]
The UK premiere of 'Star Trek Beyond' held at Empire Leicester Square - Arrivals Featuring: Idris Elba, Guest, Simon Pegg, cast Where: London, United Kingdom When: 12 Jul 2016 Credit: Joe Alvarez
7월 12일 영국 엠파이어 라이세스터 스퀘어에서 열린 ‘스타트렉 비욘드’ 프리미어에 참여한 감독과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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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민 기자
‘겅민양의 돈내고 볼만해?’ 는 영화&엔터 전문 이경민 기자가 목숨걸고 추천하는 금주의 핫 공연 &이벤트와 화제 인물을 다룹니다.   lee.rachel@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