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헌법의 탄생지로 불리는 소깔로 광장은 아즈텍 문명과 스페인 식민지 시절 유적이 산재해 있는 야외 박물관이다. 몬테수마 궁전 자리에 세워진 국립궁전은 대통령 집무실이 되어 수많은 시위 군중들의 외침을 듣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성당 옆 템플로 마요르는 아즈텍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유적지이다. 아즈텍의 수도를 함락시킨 스페인은 신전을 철거하고 그 위에 가톨릭 성당을 세웠다. 유리바닥을 통하여 텍스코코 호수 위에 떠 있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1200년 톨텍 왕국이 멸망하자 북부 멕시코 사막에 살던 멕시카인들이 중앙 멕시코 지역으로 남하한다. 쓸모 있는 땅이 모두 다른 집단들에게 선점되어, 그들은 주변국의 용병으로 활약하며 힘을 쌓는다.

1299년 독립을 선언한 멕시카인들은 콜후아족의 공주를 살해하는 일로 전쟁 위기를 맞이한다.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굉음과 함께 사원 꼭대기에 독수리가 앉은 것을 본 콜후아 족장은, 공격 대신 이들을 추방한다. 독수리를 따라 호숫가 섬에 도착한 그들은, 진흙뻘을 메워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하고 중심에 아즈텍 사원을 짓기 시작한다.

1325년 세워진 아즈텍 사원은 1440년 몬테주마 1세가 100 x 80m 크기로 확장하여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고, 그 위의 두 신전을 세워 물의 신과 태양의 신에게 바쳤다. ‘멕시카’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한 그들은, 훗날 멕시코 국기에 선인장 위에서 뱀을 물고 있는 독수리를 그려 넣었다. ‘아즈텍’은 멕시카의 건국 신화의 고향인 아스틀란(Aztlan)에서 유래한 것이다.

테파넥 족이 세운 도시국가 아스카포찰코의 왕 테조조목은 용맹하고 잔인한 아즈텍인들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어 도시왕국에서 제국으로 떠오른다. 1426년 테조조목의 후계자 막스틀라의 폭정에 맞선 테노치티틀란은, 텍스코코와 틀라코판을 연합한 삼각동맹군으로 1428년 아스카포찰코 제국을 멸망시킨다.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한 아즈텍(Imperio azteca)은 멕시코 분지의 도시국가들을 복속시킨다. 그들은 정복된 나라가 공물을 바치거나 새로운 적국과의 전쟁에 군사력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자치권과 권력층을 보호해주었다. 멕시코 중앙부와 과테말라까지 장악한 그들은 20여 만의 대도시로 성장하여, 당시 인구가 5만이었던 런던을 능가하였다.

1440년 아즈텍 제국 몬테수마 1세는 기존의 권력층들 대신 정복지에 감찰관을 파견하여 세금을 걷었다. 사제나 지도층 자녀들이 다니던 ‘칼메칵’이라는 고급 학교에 재능있는 평민들도 입학하게 하여, 평민이 나중에 공을 세워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기도 하였다. 아즈텍은 전 국민에게 의무교육을 시킨 최초의 나라였다.

인신공양 풍습을 갖고 있던 아즈텍 제국은 ‘꽃의 전쟁’으로 신에게 바칠 포로를 구하였다. 1450년경의 대기근을 신의 분노라 믿은 사제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제물로 바쳤고, 황제는 주기적인 꽃전쟁을 통하여 전사들의 실전 능력을 키웠다.

주변국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관리(포치테카)가 “아즈텍이 위태로워졌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면 독립을 마음에 품고 있던 무리들이 일어나 먼저 전쟁을 일으킨다. 이때 강력한 중앙군이 이들을 산 채로 잡아, 불순분자를 색출하고 인신공양 제물도 구하는 1석2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소와 돼지 등 가축이 없었던 그 사회에서 희생자의 몸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적대적인 마을에서 사람을 산채로 잡아오고 아이들은 그 인간 농장에서 더 자라도록 놓아두었다. 1521년 인구 600만의 아즈텍 제국은 인간 농장으로 원한이 깊었던 주변국들의 반란으로 스페인의 정복전쟁에 패하여 멸망한다.


글, 사진 / 박명애 (세계여행 전문가)

박명애 씨는 마일리지와 포인트로 항공권과 호텔을 해결하며, 기적처럼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몸소 체험하며 얻은 정보와 사연들을 책과 블로그를 통해 공유한다. 저서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수상한 세계여행’ 1, 2, 3권이 있다. 그의 알뜰한 세계여행은 지금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