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은 내게도 꿈의 무대” LA다저스 오르간 연주자 디터 룰 인터뷰

“빰빰빰 빠암~.”

LA다저스의 일본 투수 마에다 켄타(28)가 콜로라도 로키스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내자 베토벤의 ‘운명’이 오르간 소리로 울려퍼졌다. 오르간 소리에 맞춰 홈팬들은 “굿잡 마에다”를 외치며 흥을 뿜어냈다. 이번에는 다저스의 공격 차례. 신예 코리 시거(22)를 응원하는 팬들은 또한번 오르간 소리에 맞춰 “렛츠고 다저스, 렛츠고 다저스”를 힘껏 외쳤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웅장한 오르간 소리는 관중의 환호를 자아내고, 열정적인 응원을 이끌어내는 응원 단장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 상대 선수를 향한 야유를 끌어내는 것도 오르간 소리의 몫이다.

관중들도 오르간 소리를 들으면 경기를 즐기는 맛이 더 좋다고 했다. 지난 8일 다저스타디움에서 만난 앤드류 박(33)씨는 “한국 야구장에는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있지만, 미국은 오르간 소리에 맞춰 응원을 한다. 저 소리가 없다면 경기 보는 재미가 확실히 덜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사는 샐리 스미스(29)는 “10년 전 가족들과 야구장에 온 뒤로 처음 다저스타디움을 찾았다. 오르간 소리를 들으니 10년 전 가족의 모습도 떠오르고 여기가 미국이구나 싶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야구를 제대로 즐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오르간 연주 소리. 하지만 다수의 관중은 오르간 소리가 라이브로 직접 연주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다저스타디움 오르간 소리의 주인공은 연주가 디터 룰(47).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을 갔다가, 오르간 소리가 좋아 결국 경기장 오르간 연주자가 됐다. 스무살때부터 11년 동안 아이스하키팀 LA킹스 연주를 맡았고, 이후 2015년까지 농구팀 LA레이커스에서 활약했다. 지난해 28년 동안 다저스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낸시 비 헤플리(80)가 은퇴하면서 올 시즌부터 다저스의 오르간 건반을 책임지고 있다.

룰은 특별히 한국과 관련된 목표가 있다. 약 2년 뒤로 다가온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메인 오르간 연주자로 활약하겠단 꿈이다.

“한국 응원단,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축제 현장에서 연주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룰을 다저스타디움에서 직접 만나봤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자랐다. LA킹스(아이스하키·11년)와 LA레이커스(농구·15년)를 거쳐 (올 시즌부터) 다저스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다.”

언제부터 오르간을 연주하기 시작했나.

“9~10세 때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그러다가 스포츠 경기를 보러갔는데, 그때 오르간 소리를 처음 듣고 참 좋아했다. 이후로도 라디오로 경기 중계를 듣거나, TV로 경기를 볼 때마다 오르간 소리를 즐겨 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와! 정말 소리 좋다’. 결국 그 일을 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나.

“워낙 많은 경기를 경험하다 보니 한 경기를 꼽기는 어렵다. 각종 올스타전이나 아이스하키 결승전, 또 농구 챔피언결정전 등이 가장 짜릿했다.”

프로 스포츠 경기 말고 올림픽에도 여러 번 나갔다고 들었다.

“동계 올림픽 경험이 많다. 솔트레이크시티(2002), 이탈리아 토리노(2006), 캐나다 벤쿠버(2010), 러시아 소치(2014)에서 아이스하키 경기 연주자로 나갔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참가한 유일한 하계 올림픽이었다.”

기억나는 한국 팀 경기나 한국 선수가 있나.

“아쉽게도 한국 경기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최희섭, 박찬호 선수는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한다.”

다저스 류현진은 어떤가.

“빨리 부상에서 복귀하면 좋겠다. 열렬한 다저스 팬으로서 그의 투구를 다시 보고 싶다.”

특별한 연주곡으로 환영해 주는 건 어떤가.

“실제로 선수들이 가끔 특정 곡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한다. 아직 류현진의 주문은 없었지만, 연주하거나 DJ가 노래를 틀어줄 수도 있다.”

프로 경기와 올림픽에서 연주하는 게 어떤 차이가 있나.

“올림픽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연주해야만 한다. 두팀 모두 점수를 올리면 축하 연주를 해야한다. 하지만 다저스는 우리 홈팀이기 때문에 원정팀이 점수를 내도 가만히 있는다.”

한국과 관련된 특별한 목표가 있다고 들었다.

“맞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 메인 연주자로 가고 싶다. 이전처럼 기회가 또 찾아오면 좋겠다.”

평창 올림픽에 또 참여하고 싶은 이유가 있나.

“그냥 올림픽이란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한 곳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연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 경기장에서 전 세계인들의 에너지를 한번에 느낄 수 있다는 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평창 올림픽도 굉장할 거다. 행운을 빌어달라. 꼭 가고 싶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선발되나.

“대부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섭외를 한다.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을 물색해 뽑는다.”

인터뷰 후 룰은 야구장에서 자주 들었던 익숙한 곡들을 직접 연주해 들려줬다. 연주곡은 다저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 투수가 삼진을 잡을 때, 멋진 수비를 보여줬을 때, 투수 교체될 때 등 상황에 따라 다양했다. 실제로 보고 들으니, 연주자가 관중의 함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는지 볼 수 있었다.<연주 영상은 koreadaily.com>

룰은 “오르간 연주가 라이브인 줄 모르는 관중이 있으면 서운하지 않냐”는 마지막 질문에 “나를 또 한 명의 다저스 선수라고 불러주는 이들도 있어 괜찮다”고 했다.

룰은 “다저스가 이기는 때가 가장 좋다. 7회에 관중이 모두 일어나 내 반주에 맞춰 ‘테이크 및 아웃 투 더 볼 게임’을 부를 때도 행복하다. 연주에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 응원할 때도 좋다. 함께 하는 순간이 모두 짜릿하다. 그거면 난 행복하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LA다저스타디움=오세진 기자

ore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