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대세다. 미국은 물론 한국까지 현재 가장 ‘핫한’ 장르는 단연코 힙합이다. TV 프로그램은 힙합경연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무한도전’같은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힙합의 요소를 차용한다. 이제 힙합은 모르면 남들과 대화가 잘 안 되는 문화코드가 됐다. 힙합 중에서도 사람들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요소는 디스다. 다른 장르와는 달리 힙합은 솔직함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맘에 들지 않는 상대를 바로 실명을 거론하면서 공격하는 디스는 힙합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디스를 통해서 힙합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다. 


3라운드  제이지 VS 나스

시작은 한 래퍼의 죽음이었다. 동부 힙합의 전설이자 비기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노토리어스 비아이지가 1997년 LA에서 수십 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이 발단이 됐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 힙합의 제왕은 비기였다. 상업적인 성과를 봐도 실력을 봐도, 비기가 뉴욕의 황제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같은 브루클린 출신으로서 비기와 친분이 있었던 제이지는 1996년에 갓 데뷔한 래퍼였다. 훌륭한 1집 앨범을 통해서 비기의 왕좌를 이어 받으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94년 명반 일매틱으로 크게 주목을 끌었던 나스는 뉴욕의 왕은 자신이 물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서서히 끓고 있었다.

제이지는 비기와 같은 브루클린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지역세력을 규합해 ‘락카펠라’라는 음반사를 차렸다. 나스는 맙딥 등 자신의 출신지인 퀸스의 래퍼들을 모았다. 과연 뉴욕의 왕은 누구인가를 두고 서로 격돌할 준비는 끝났다.

제이지와 나스는 뉴욕의 왕좌를 놓고 경쟁했다. 왼쪽부터 제이지, 비기, 나스.

 

뉴욕의 가장 유명한 힙합 라디오 핫97에 출연한 제이지는 나스의 동료 맙딥을 비판하면서 본격적인 디스가 시작됐다. 이미 제이지의 동료 멤피스 블릭과 나스의 대리전과 같은 양상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는 본격적인 디스의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나스는 프리스타일로 녹음한 곡 Paid in Full을 공개한다. 이를 통해서 제이지와 락카펠라 전체를 신랄하게 디스했고 제이지 또한 정식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제이지는 자신의 최고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 Blueprint에 Takeover라는 곡을 싣게 된다. 역사상 최고의 디스곡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이 곡에서 제이지는 맙딥과 나스를 깍아내리고 자신이 뉴욕의 왕임을 선언한다.

나스가 자신에게 덤비는 것은 “총싸움에 칼을 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너의 여자를 납치하고 너의 아이들에게 침을 뱉을 것”이라고 말한다. 건조하고 무서운 가사를 쓰는 것으로 유명했던 갱스터 래퍼 맙딥은 과거 발레복을 입었다고 폭로하면서 조롱한다.

 

명곡에는 명곡으로 맞선다. 나스와 제이지의 디스전이 전설로 남은 이유다. 명곡 Takeover를 들은 나스는 자신의 앨범 Stillmatic에 Ether를 수록했다. 역시나 날카로운 가사가 계속되는 디스곡이었다.

나스는 비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며 제이지는 이에 못 미친다고 단언했다. 나스가 “나만큼 진정성 있는 래퍼는 없으며 나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래퍼를 단 한 명이라도 대봐라”라고 랩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전율을 느꼈다. Takeover에 전혀 밀리지 않는 가사들은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2001년의 힙합씬은 뉴욕의 왕좌를 놓고 벌인 두 사람의 디스전 덕분에 뜨거웠다.

 

대결이 최절정에 이렀던 2002년 이후부터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활동에 더욱 몰두하면서 디스전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뉴욕 힙합계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공식적인 디스전의 종결을 발표한 것은 2005년. 각각의 패밀리들이 나선 대리전까지 합하면 디스전이 7년 가량 진행된 것이다. 제이지와 나스의 디스전이 역사상 가장 긴 디스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후 나스는 제이지가 사장으로 재직하던 데프잼 레코드로 소속사를 옮기면서 화해 이후 둘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디스전은 평화로운 결말을 남겼으며 서로가 명곡을 발표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수없이 많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이 둘은 이후에도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둘 모두 커리어의 정체기를 맞이했을 때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었다는 점에서 둘 모두 승리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2005년 제이지의 콘서트 무대에서 디스전의 종결을 발표하고 서로 화해하는 장면.

디지털부 조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