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대세다. 미국은 물론 한국까지 현재 가장 ‘핫한’ 장르는 단연코 힙합이다. TV 프로그램은 힙합경연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무한도전’같은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힙합의 요소를 차용한다. 이제 힙합은 모르면 남들과 대화가 잘 안 되는 문화코드가 됐다. 힙합 중에서도 사람들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요소는 디스다. 다른 장르와는 달리 힙합은 솔직함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맘에 들지 않는 상대를 바로 실명을 거론하면서 공격하는 디스는 힙합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디스를 통해서 힙합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다.


 

4라운드 LL Cool J VS 캐니버스

 

이제는 사회자나 연기자로 우리에게 더 친근한 LL Cool J지만 그는 뉴욕 출신의 ‘살벌한 래퍼’로 연예계에 첫발을 디뎠다. 파워풀한 그의 랩스타일은 마니아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1985년에 데뷔해 이미 10년 이상 최고의 래퍼 자리를 지키고 있던 LL Cool J는 1997년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래퍼들을 모아서 곡을 만들었다. 제목은 ‘4, 3, 2, 1’이었다. 곡에는 콤비로 명성이 드높던 Method Man과 Redman, 거친 목소리로 최고의 인기를 얻은 DMX 등이 참여했다. 그리고 이 곡에 ‘라임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진 신예 래퍼 캐니버스 또한 힘을 보탰다.

문제는 캐니버스의 가사였다. 그는 LL Cool J의 오른팔에 있는 마이크 문신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을 했고 가사에 ‘LL 나한테 그 마이크를 빌려줄 수 있겠어?’라는 구절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LL Cool J는 마이크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마이크를 빌려달라는 가사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LL Cool J는 캐니버스에게 가사를 바꾸라고 이야기했다.

4, 3, 2, 1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LL Cool J가 마이크 문신을 자랑하고 있다.

캐니버스는 대선배의 권유에 꼼짝 못하고 가사를 바꿨다. 마이크에 대한 내용은 삭제됐다. 하지만 발매된 노래를 듣자 캐니버스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LL Cool J는 ‘너는 이 마이크를 빌릴 수 없어. 숭배해야지. 넌 날 화나게 하기 싫을 거야. 친하게 지내고 싶겠지’라면서 명백하게 캐니버스를 디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LL Cool J가 가사가 수정됐음에도 디스를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캐니버스가 바꾼 내용조차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캐니버스는 마이크에 대한 내용을 빼는 대신 ‘나는 너의 왕관을 가져 올 거야. 머리가 붙어있는 채로’라는 가사를 삽입했다. 둘은 결국 한 노래 안에서 서로 디스하게 됐다. 힙합계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캐니버스는 이런 배틀에서 지는 것이 자신의 커리어를 끝장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심혈을 기울여 곡을 하나 준비한다.

캐니버스의 답가 Second Round KO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캐니버스가 LL Cool J에게 보내는 곡의 제목은 세컨드 라운드 KO였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훌륭한 곡이었다. 캐니버스는 ‘너는 니 몸만 보여주지 진짜 스킬은 보여줄 수가 없다’고 말하며 ‘내가 너의 팔에 있는 그 문신을 도려내겠다’고 선언한다. 그가 왜 라임폭격기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가사다. 권투를 테마로 한 이 곡은 마이크 타이슨이 함께 했다. 후렴부에 내레이션을 하고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다. 그야말로 LL Cool J를 KO시킬만한 곡이었다.

물론 LL Cool J도 이런 곡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을 사람은 아니다. The Ripper Strikes Back이라는 곡으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캐니버스에게 ‘유명해지고 싶어? 하룻밤 안에 유명하게 해줄게. 폭탄에 엉망이 되는 모습으로 유명해 질거야’라면서 랩을 폭풍같이 쏟아냈다.

캐니버스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곡 Rip the Jacker를 통해서 자신의 랩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렇게 세대가 다른 두 래퍼는 강한 랩 구절을 주고 받으면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캐니버스는 이후 프로듀서였던 와이클레프 장과 갈등을 겪으면서 제대로 된 음반을 발매하지 못한다. 이후에 언더그라운드로 돌아가 좋은 랩을 선보였지만 데뷔하자마자 대선배와 디스에 휘말리면서 받았던 언론의 관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LL Cool J는 디스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거친 모습을 보여주면서 커리어를 더 길게 이어나갔다. 이후에는 연기자와 사회자로 폭넓게 활동했다. 래퍼로서의 인기는 전과 같지 않았지만 꾸준히 음악을 내며 활동하는 중이다.

1998년 이후로 이 둘은 서로 강한 디스를 주고 받지 않으며 상황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2014년 뉴욕에서 열린 대형 콘서트에 참가한 LL Cool J는 캐니버스를 무대로 불러내서 둘이 공식적으로 화해를 했다. 17년만의 화해였다.

2014년 캐니버스와 LL Cool J가 화해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