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커다란 이변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예상한 영화들이 상을 받았다. 자신의 감독 커리어에 남을만한 역작을 만들어낸 기예르모 델 토로는 감독상과 작품상을 모두 받았다. 많은 언론들이 예상한 대로였다. 그는 수상 소감을 “나도 이민자다”라고 외치면서 시작했다.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또한 이변 없이 게리 올드먼과 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 돌아갔다. 시상에서 이변이 없자 화제가 된 것은 사회적 메시지였다. 시상자와 수상자들은 앞다투어 사회적 발언을 쏟아냈다. 일부 언론에서는 여러 작품에 주요 부문 상을 골고루 나눠줬고 깜짝 놀랄 만한 상도 안 나와서 밋밋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지미 키멜의 농담들

지난 해에 이어서 오스카 진행을 맡은 지미 키멜의 농담은 신랄할 때도 있었고 재기 넘칠 때도 있었다. 연이어 터져 나온 성추문에 빗대서 “아카데미 시상식의 트로피야말로 진짜 우리가 필요한 사람이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성기가 없다는 점에서”라고 말할 때는 폭소와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대부분의 대형 시상식은 항상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도 3시간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특히나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이 늘어지면 시상식은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지미 키멜은 가장 짧은 수상 소감을 말한 수상자에게 2만 달러에 달하는 제트 스키를 선물한다고 선언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제트 스키 옆에서 과장된 포즈를 하던 대배우 ‘헬렌 미렌’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실제로 많은 수상자는 ‘지금 제트 스키를 노리고 있으니 빨리 끝내겠다’고 운을 떼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제트 스키는 의상상을 수상한 ‘팬텀 스레드’의 의상감독 마크 브리지스가 가져가게 됐다.

제트 스키는 의상상 수상자 마크 브리지스에게 돌아갔다. 헬렌 미렌이 바로 옆에서 함께 했다.

지미 키멜의 진행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지난 해에 이어서 진행된 스타들이 일반인을 방문하는 코너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번에는 신작 ‘링클 인 타임’의 시사회에 참석하고 있는 관객들을 방문해서 간식을 나눠줬는데 갤 가돗과 루피타 뇽오 등 스타들이 함께 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 등의 언론에서는 ‘과연 이런 코너가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한다는 취지였지만 간식을 나눠주고 스타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수상자들의 소감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맥도먼드의 인클루전 라이더

많은 관객이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은 것은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다. “클로이 김이 1080도 회전을 연속 두 번 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라며 시작한 그의 수상소감은 모든 여성 후보들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대배우 메릴 스트립을 시작으로 제작자와 감독 등 여성 영화인들이 일어났고 ‘우리 모두는 서로 도와야 한다’며 영화계의 여성들이 서로의 프로젝트를 돕고 응원할 것을 선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라는 말을 남겼다. 많은 사람에게 생소한 단어다. 처음 이 용어를 만들어낸 USC의 스테이시 스미스 박사에 따르면 인클루전 라이더란 영화배우들이 계약을 할 때 여성, 소수인종, 성소수자 등의 적극적인 기용을 제작사에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어로는 ‘포함 조항’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맥도먼드는 ‘영화의 세계 또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어는 시상식 직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시청률은 악화일로

몇 년째 악화일로를 걷던 시청률은 올해 특히 더 떨어졌다. 5일 발표된 아카데미의 초기 시청률은 18.9%로 지난해보다 16% 하락한 수치다. 2008년 이후 최악의 시청률로 알려졌다. 시청률이 떨어진 것에는 다양한 분석이 있다. 유튜브TV 등 스트리밍이 활성화 되면서 기존의 시청률 기준의 하락세를 멈출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카데미 자체에 대한 불만도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변이 없었고 박스오피스에서 크게 흥행한 영화보다는 평단에서 호평 받은 영화로 구성돼 있다.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작품상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극장을 가는 사람들은 쉽게 보기 힘든 영화다. 올해도 박스오피스를 화려하게 장식한 영화들은 시상식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14번의 도전

로저 디킨스는 영국 출신의 촬영감독이다. 블록버스터보다는 예술영화 위주로 작업해온 거장. ‘파고’, ‘007: 스카이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카리오’ 등을 찍었다. 1995년 쇼생크 탈출로 처음 촬영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후 무려 14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한 번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2018년 그는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드디어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마이크 앞에선 그는 “어차피 제트스키를 못 타서 길게 말하겠다”라고 한 뒤에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감독 드니 빌뇌브와 자신의 아내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30년 이상 함께 일했던 스태프에게 공을 돌리면서 품위 있으면서도 소탈한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로더 디킨스는 14번의 도전 끝에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다.

코비의 아카데미

최고의 농구선수이자 LA레이커스의 전설로 은퇴한 코비 브라이언트는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상 후보에 올랐을 때부터 화제였다. 그가 은퇴를 하면서 남긴 편지 ‘농구에게’를 토대로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고 애니메이션을 그린 글렌 킨과 함께 후보에 올랐다.

그가 수상하자 농구팬들은 ‘은퇴를 했음에도 농구 이외의 것으로 우승을 한다’며 축하하기 바빴다. 단편 애니메이션상이 이 정도로 주목을 받은 것은 처음 봤다는 반응이 대부분. 코비는 “농구선수로서는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 큰 일을 하게 되서 기쁘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는 지난달 보수성향 정치평론가 로라 잉그램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한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에 대해서 한 말을 꼬집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