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트렌드는 ‘아빠 패션’이다. 촌스런 패션 아이템들이 팔려나간다. ‘볼캡’ 혹은 ‘대드 햇’으로 불리는 밋밋한 야구모자는 셀레브러티들의 필수품이 됐으며 커다랗고 못생긴 디자인으로 젊은이들을 질색하게 만들었던 ‘대드 슈’는 명품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발매하고 있다. 절대 금기처럼 여겨졌던 ‘트레이닝복’ 또한 새롭게 유행하고 있다. 최근의 트렌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촌스러움’이다.

 

아빠 모자, 아빠 신발, 아빠 추리닝(?)

구깃구깃한 모양에 어정쩡한 모자챙. 아버지들이 쓰는 거라고 여겨졌던 야구모자가 다시 유행을 타고 있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에서도 이런 ‘아빠 모자’를 출시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지 하디드, 카라 델레바인, 켄달 제너 등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여자모델들도 이런 모자를 쓰고 나와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카다시안 패밀리의 일원이자 현재 가장 영향력있는 모델로 불리는 켄달 제너(왼쪽)가 ‘아빠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

이 뿐만이 아니다. 커다란 모양의 워킹 슈즈 또한 부활하고 있다. 투박한 디자인 때문에 ‘아빠 신발’로 불리면서 완전히 외면당하던 것은 옛날 일이다. 깔끔한 단화나 화려한 디자인의 농구화를 신던 셀레브러티들은 앞다투어서 아빠 신발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발렌시아가의 트리플 S는 800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시된지 하루 만에 매진됐다. 디올 옴므도 2018년 컬렉션에 비슷한 디자인의 신발을 내놨다. 인터넷 쇼핑몰 미스터 포터의 신발부문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모리스는 “라프 시몬스가 아디다스와 협업해서 낸 오즈위고는 5분 만에 매진 됐다”면서 아빠 신발의 인기를 말했다.

발렌시아가의 트리플 S는 지금 가장 인기있는 신발 중 하나다.

허리에 차는 가방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힙색, 범백, 패니팩 등 크기와 디자인에 따라 다르게 불렸다. 마치 장년층이 차는 ‘전대’같이 보여서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패니 팩’이라는 옛이름이 다시 부활하면서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템이 됐다. 랩스타들이 크로스백처럼 어깨에 둘러 앞으로 메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추리닝’으로 불리는 트레이닝복 또한 큰 유행을 타면서 명품으로 등극했다. 카파나 필라와 같은 스포츠 브랜드들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9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트레이닝복의 유행이 돌아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구찌는 트레이닝복을 깔끔한 핏과 고급소재로 만들어서 ‘명품화’에 성공했다.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구찌의 트레이닝복은 없어서 못팔 정도.

대체 왜 이런 촌스러운 패션이 거리를 메우고 있는 것일까?

래퍼 에이샙 라키는 패니 팩을 유행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패셔니스타다.

 

스트리트 패션의 강한 영향력

2017년 패션계의 가장 큰 뉴스는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힙합과 스케이트 보드 문화에 기반한 스트리트 패션이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 반 아쉐는 “명품과 스트리트 패션은 그 어느때 보다 깊게 연결돼 있다”며 “스트리트 패션이 영감의 원천이다”라고 말했다.

구찌는 스트리트 패션의 영향을 받은 트레이닝복을 선보였다.

구찌는 할렘의 전설적인 재단사 대퍼 댄의 영향을 받은 재킷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퍼 댄은 1980년대 래퍼들에게 자신이 커스텀한 옷을 판매하던 사람이다. 당시 구찌나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고려해 래퍼들에게 옷을 판매하지 않자 대퍼 댄이 명품을 커스텀해서 래퍼들에게 제공했었다. 오랜 시간 천대받던 힙합문화와 스트리트 패션이 이제는 명품 브랜드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트레이닝복이나 야구모자, 스니커 등은 스트리트 패션을 상징하는 아이템들이다. 깔끔한 정장과 멋스러운 페도라, 빛나는 구두와는 정반대에 위치한다.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새에 급성장해버린 스트리트 패션에서 강한 영감을 받고 있다. 기존에 찾아볼 수 없는 아이템들이 발매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00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모델 헤일리 볼드윈이 발렌시아가의 아빠 모자를 쓰고 있다.

 

90년대를 돌아보다

1990년대를 돌아보는 복고유행은 아빠 패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복고 유행을 제대로 잡아낸 디자이너가 고샤 루브친스키다. 러시아 출신의 루브친스키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90년대 러시아의 감성을 그대로 옷에 담았다.

카파나 필라와 같은 브랜드들과 협업해서 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느낌의 의류를 발매했고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인터넷 패션전문매체 하입비스트는 대드 햇과 트레이닝복의 유행을 주도한 고샤를 ‘패션계의 중심’이라고 칭했다.

고샤 루브친스키는 90년대에 유행하던 스포츠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물론 아빠 패션이 대중화된 것은 스트리트 패션을 주도하는 셀레브러티들 덕분이다. 음반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래미상을 수상해서 화제가 된 아티스트 챈스 더 래퍼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숫자 3이 쓰여진 야구모자를 항상 쓰고 나온다.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래퍼로 불리는 칸예 웨스트는 자신의 브랜드에서 직접 워킹 슈즈와 비슷한 디자인의 신발을 발매했다. ‘이지 부스트 700 웨이브 러너’로 불리는 이 신발은 9월에 발매된지 하루 만에 완판됐다. 11월에 배송을 해주는 예약구매였음에도 불구하고.

칸예 웨스트와 아디다스가 손 잡고 만든 ‘이지 부스트 700 웨이브 러너’는 순식간에 품절됐다.

칸예 웨스트의 패션쇼에 모델로 섰던 래퍼 릴 야티는 1990년대 인기있던 브랜드인 노티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됐다. 이제 겨우 21살에 불과하며 정규앨범을 한 장밖에 내지 않은 신예지만 노티카라는 거대한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그는 복고패션을 나름대로 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스트리트 패션과 셀레브러티 그리고 복고감성이 만나서 폭발한 ‘아빠 패션’의 유행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촌스럽다고 모두가 꺼리던 아이템이 이제는 유행의 첨단에 서게 됐다. 기존 패션계의 관념을 뒤집어 버리는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