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부터 15일에 걸쳐 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E3는 올해도 성황을 이뤘다. 7만 여명에 가까운 관람객들이 몰려서 회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인기 게임을 한번이라도 체험해보려면 2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었다.

게임의 장르 또한 다양했다.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캐주얼 게임’부터 장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 최소 100시간 이상은 즐겨야만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대작 게임’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올해 E3에서는 전시관의 실내장식에 크게 신경 쓴 곳이 많았다. 스파이더맨부터 스타워즈까지 영화를 기반으로 한 대작 게임들을 많이 선보인 소니는 영화의 세트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폭력배를 테마로 한 게임 ‘야쿠자’를 홍보하기 위해서 신주쿠 길거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세가의 부스 또한 많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렸던 곳은 신작 ‘슈퍼 마리오 오딧세이’를 내세운 닌텐도의 전시관이었다. 신작게임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해 놓아서 마치 놀이공원에 와있는 것과 같았다. 슈퍼 마리오의 신작을 해보기 위한 게이머들의 줄은 길게 늘어서서 대기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일본의 여전한 강세

업계의 트렌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1월에 열린 가전제품 전시회 CES와 세계 최대의 게임 박람회 E3는 닮아있다. 둘은 모두 미국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컨벤션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참가국의 위상’이었다.

CES에서는 LG와 삼성 등 한국의 업체들이 ‘주인공’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샤오미나 화웨이 같은 중국 브랜드 역시 높아진 위상을 선보였다. 전통적으로 가전에서 강세를 보였던 미국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E3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게임제작사를 뺀다면 행사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락실 최고의 인기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30주년 기념 전시관을 마련한 캡콤이나 명작 RPG 파이널 판타지의 3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게임의 출시를 알린 스퀘어에닉스 등의 일본 게임 제작사들은 ‘역사’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2차 대전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서 실감나게 선보인 게임 ‘콜 오브 듀티: WW2’를 선보인 액티비전이나 스파이더맨 신작 영화 개봉에 맞춰서 스파이더맨 게임을 선보인 소니 또한 미국 게임업계의 저력을 엿볼 수 있게 해줬다.

게임은 대중문화의 총아라고 불린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이용한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 눈길을 끄는 화려한 그래픽, 몰입도를 높여주는 사운드까지 모든 요소가 제대로 맞아 떨어져야지만 ‘히트작’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E3는 미국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힘이 건재함을 알 수 있는 곳이었다. CES에서 볼 수 있듯이 하드웨어에서 미국과 일본은 ‘왕좌’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드웨어를 채우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미국과 일본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소프트파워 강국으로서 두 나라의 위상은 여전하다.

한국의 씁쓸한 현실

한국은 게임강국 중 하나지만 여전히 ‘빅 투’에 도전하는 입장이다. 올해 한국업체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곳은 신작 게임 ‘로 브레이커스’로 대형 전시관을 꾸린 넥슨 아메리카였다.

로 브레이커스는 박진감 넘치는 슈팅게임으로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관람객들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방송하고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중계까지 했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과 같아서 관람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NC소프트 또한 마스터X마스터라는 신작으로 E3를 찾았다. 별도의 전시관을 마련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게임업계의 E3에서의 위상은 극히 낮았다.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국게임들은 엄청난 매출을 올리긴 하지만 전세계적으로는 무시당하고 있다”며 “원인은 온라인 게임에만 치중하는 제작환경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야기나 설정 등에서 ‘창의성’을 찾아보기 힘든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 위주로 게임업계가 흘러가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게임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마치 뻔한 스토리의 막장 드라마를 계속 생산해내는 것과 같다”며 “돈은 벌리겠지만 작품성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E3에서 마주한 한국 게임업계의 씁쓸한 현실이었다.


 

숫자로 보는 E3

250달러 일반인이 E3에 참가할 수 있는 엑스포 패스의 가격

293개 E3 2017 참가업체 수

2000개 올해 E3에서 선보여진 게임의 수

6,8400명 E3 2017 참가인원

5,500,000시간 게임전문방송 사이트 트위치에서 E3 관련 콘텐츠가 방송된 시간

15,000,000개 E3 2017과 관련한 소셜미디어 포스팅의 수


취재/ 조원희 기자
영상/ 송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