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주와 사우스다코타주의 황량한 벌판을 벗어나 동남쪽으로 달렸다. 네브래스카에 들어서면 시야가 넓어진다. 면적의 90%가 평탄한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옥수수 농사와 목축이 주요산업이며 세계 정육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다.

프리웨이에 소, 돼지 등 가축을 실어 나르는 대형 차들이 줄을 이었다. 며칠간 폭풍우가 예보되어 비바람을 피할 겸 네브래스카주의 주도인 링컨시에서 멀지 않은 스테이트 파크에 머물렀다. 네브래스카주가 오염된 것인지 스테이트 파크에는 파리가 너무 많아 차문을 열 수가 없었다. 잠깐 문이 열린 사이 100여 마리 파리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퇴치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1855년 개척민들이 살기 시작해 1878년 포레스트 시로 발전했다. 1896년 건설기계가 없던 시절 사람의 힘으로 지어진 시의 상징 5층 높이의 법원빌딩.

몇 마리는 살아남아 아이오와주로 넘어왔다. 밤새 비를 동반한 폭풍이 몰아쳤고 차가 바람에 흔들려 잠을 설쳤다. 아침에는 세찬 비바람이 방향을 바꿔 불어 왔다. 방수처리돼 있는 RV 외장 스피커 콘이 비바람에 파손됐다. 누수가 될까 테이프로 응급처치를 하고 서둘러 350마일 북동쪽 위네베고 RV 본사 서비스 센터로 이동했다. 그날 저녁 아이오와주 포리스트시티에 있는 위네베고 RV 서비스 센터에 도착해 캠핑을 하고 다음날부터 정비를 받았다.

위네베고의 본사에서는 수리와 부품교체가 무료라 많은 RV 여행자들이 들르는 명소다.

미국 RV 생산업체 1, 2위를 다투는 위네베고 RV 본사와 공장이 있는 포리스트시는 미네소타주 접경에 위치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 한가운데 위치한 포리스트시는 도시 한켠으로 작은 위네베고 강이 유유히 흐르는 아담하고 청결한 곳이다. 위네베고 RV에 종사하는 직원이 2500명이 넘는다고 하니 4500여 명 포리스트 시 인구의 절반이 위네베고 RV와 연관이 있다. 한 기업이 도시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하던 포리스트 시티 출신 사업가 존 K. 핸슨이 경제적 침체를 겪고 있던 고향을 살리기 위해 몇몇 지역 투자자와 함께 1958년 2월 여행용 트레일러 공장을 설립했다. 1960년에는 회사 이름을 위네베고로 변경하고 트레일러용 가구 및 기타 부품을 직접 생산했다.

트레일러를 생산하던 위네베고사는 1966년 최초의 ‘모터 홈’을 출시하며 경쟁사 RV가격의 약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는 혁신을 일으켰다. 이는 RV에 사용되는 가볍고 강도 높은 차량 벽, 플라스틱 저장탱크, 가구 등 부품을 일괄 생산해 출고가를 줄였기 때문이다.

위네베고가 첫 생산한 RV의 상표가 모터 홈이었고 이 명칭은 RV를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다.

위네베고의 본사에는 공장견학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으며 작은 RV박물관도 있다.

한국에서는 미니밴을 RV라고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캠퍼나 트레일러, 모터 홈처럼 생활공간을 갖춘 여행·캠핑용 차량을 RV로 부른다. 미국에서는 RV를 이용해 여행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주로 50대 이상이다. 그러나 요즘은 야외 활동을 즐기는 젊은 세대와 가족단위 여행자가 증가하면서 30~40대의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초보적이긴 하지만 수 천대의 RV가 보급되어 있고 텐트를 이용한 캠핑문화에서 RV차량을 이용한 캠핑 여행문화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한다.

위네베고 본사에서는 수리 받는 동안 기다릴 수 있는 대기실도 있었다.

미국은 2016년 약 37만5000대의 RV가 생산됐고 한 해 4000만 명 이상이 캠핑을 즐긴다. RV로 캠핑을 하며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고 여행을 하며 RV내부를 자신만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해 제2의 집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미주 한인들도 캠핑 등을 통해 여가시간을 보내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민살이의 동병상련이랄까. 가끔 캠핑장에서 만나는 한인들이 더 없이 반갑다. 한국음식을 나누며 정을 나누기도 한다.

이번 위네베고 RV 방문은 전화위복이었다. 위네베고 무료 캠핑장에서 며칠을 지내며 수리와 부품교체를 하고 같은 목적으로 방문한 다양한 사람들과 여행정보도 공유하는 값진 시간을 보냈다. 수리와 부품교체도 무료였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