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터 요새 Fort Sumter

340 Concord StCharleston, SC 29401

2017년 크리스마스 기간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외곽 캠핑장에서 지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상징하는 종려나무가 많은 찰스턴의 겨울은 가끔 비를 뿌리지만 공기가 맑고 따뜻했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q별명답게 인구 10여만의 도시에 교회가 100여 곳이나 된다. 플랜테이션 농업을 기반으로 한 남부의 전통적인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다.

쿠퍼 강과 애쉴리 강 사이에 대서양을 향해 길게 뻗은 삼각주 지형의 찰스턴은 1670년대 영국 이민자들이 개척한 마을로 당시 영국 왕 찰스 2세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붙였다.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이나 뉴잉글랜드에 비해 늦게 개발된 찰스턴은 영국 왕실의 직할지였던 18세기 초엽부터 남부의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포트 섬터는 찰스턴에서 뱃길로 30분 떨어져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독립전쟁 영웅 토머스 섬터의 이름을 딴 이 인공의 성채가 착공된 것은 1829년이다. 1812년 영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대서양 연안 항구들의 방위를 강화할 필요성을 절감한 연방정부가 기획한 일련의 요새지 건설 사업의 하나였다.

찰스턴의 영국 이민자들은 흑인 노예를 이용해 늪지를 개간 후 벼농사를 짓고 담배, 인디고 나무를 재배했다. 찰스턴은 뉴올리언스, 미시시피와 함께 가장 큰 노예시장이 섰던 곳이다.

농산물을 영국에 수출해 돈을 모은 영국 이민자들은 바닷가에 저택을 짓고 식민지 최초의 극장과 도서관을 만들었다. 1773년에는 미국 최초의 박물관을 열었다.

찰스턴은 남북전쟁 전 남부의 중심이었다. 1860년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링컨이 연방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 사우스캐롤라이나 의회는 찰스턴에서 만장일치로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 여섯 주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동조해 잇따라 연방을 탈퇴했다. 연방을 탈퇴한 주의 대표들은 링컨의 대통령 취임을 한 달여 앞둔 1861년 2월, 앨라배마의 몽고메리에 모여 남부연합을 결성하고 미시시피 출신의 정치가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1861년 남북전쟁 발발 시까지 성채에는 7만 여톤의 암석과 멀리 북부의 메인 주에서 실어온 1만 여톤 화강암이 투입됐으나 계획된 공정의 90%밖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실로 50여 년에 걸친 대공사였다. 높이 지상 50피트, 두께 5피트, 사면이 190피트에 이르는 방벽으로 설계됐다. 3면에 3층으로 모두 135문의 대포를 장착할 수 있었고 650명의 병력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있었다. 지금은 국립 역사기념지로 보존되어 있으며 연방정부 국립공원관리국에서 관리를 하며 일반공개를 한다.

3월4일 대통령에 취임한 링컨은 연방 탈퇴와 연방분리는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남북의 갈등은 심화되고 일촉즉발의 내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남북전쟁의 기폭제가 된 곳은 대서양에서 찰스턴 항으로 들어오는 만 입구에 위치한 바다의 검문소 섬터 요새다. 섬터 요새는 1812년 영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연방정부가 찰스턴 항을 방위하기 위해 축조된 인공섬이다.

요새는 17미터 높이의 외벽에 135문의 대포를 장착하고 650여명의 군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연방에서 탈퇴한 뒤에도 섬터 수비대장인 로버트 앤더슨 소령은 남부연합에 투항하지 않았다.

남부연합 정부의 명령을 받은 남부연합군 피엘 보리가드 장군은 4월11일 앤더슨에게 항복하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앤더슨이 이에 불응하자 보리가드는 4월12일 새벽 공격을 개시했다.

돌아오는 배에서 바라본 쿠퍼강 다리. 찰스턴과 마운트 프레젠트를 잇는 다리다.

진지가 파괴되고 전투 능력을 상실한 앤더슨 소령은 공격이 시작된 지 34시간 만인 1861년 4월14일 남부연합군에 항복했다. 이렇게 해서 당시 미국인구의 2%인 62만 명이 사망한 남북전쟁이 시작됐다.

전쟁기간 동안 남부연합군은 독립의 상징으로 섬터 요새를 사수하려 했고 북군은 상징성 때문에 끈질기게 재점령을 시도했다. 4만6000여 발의 포탄이 퍼부어졌던 섬터 요새는 폐허가 되었다.

찰스턴 박물관에는 남군이 최초로 사용한 잠수함 모형이 전시돼 있다.

유람선 스크루가 만들어내는 흰포말을 뒤로하고 부두에 도착했다. 부둣가는 남북전쟁 이전 번성했던 남부의 중심지를 재현하려는 듯 고급 콘도들이 바다를 맞대고 줄지어 있다. 남북전쟁터에서 현실로 돌아온 듯한 환상에 젖는다. 패전의 멍에를 썼던 남부 사람들의 응어리진 상처는 남북전쟁 종전 153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치적, 인종적 갈등으로 남아 있지않나 하는 의문을 갖는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