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박물관의 전경.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하신 아버지의 월급봉투와 봉투를 건네 받으신 어머니의 환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인생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아버지의 누런 월급봉투는 가족을 위한 희망이었다. 고인이 되신 두 분 노고를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80년대 초반만 해도 월급봉투에는 명세표와 함께 수표, 지폐, 동전까지 들어 있었다. 월급을 받는 날이면 항상 가족들 얼굴이 먼저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아내에게 월급봉투를 건네주고 받던 ‘고생했다’는 인사말이 세상 제일 행복한 단어였다.

한번은 월급날 동료와 충무로 선술집에 들렀다. 간단한 술자리를 겸한 저녁식사를 끝내고 벗어놓은 코트 안주머니에 있을 월급봉투를 찾았다. 두툼해야 할 안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주머니를 뒤지던 짧은 시간에 주마등처럼 가족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잃어버린 월급봉투는 우리 식구에게 월급봉투만큼의 고통과 충격을 안겨줬다.

달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

90년대부터는 월급봉투는 명세표만 있는 빈 봉투였고 돈은 숫자가 되어 컴퓨터 서버를 타고 은행통장으로 직행했다. 지금껏 두툼한 현금을 보거나 직접 만져보질 못했고 지갑은 항상 배가 들러붙어 있었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50조 달러 이상은 컴퓨터상으로만 존재하는 돈이다. 모든 상거래가 컴퓨터로 이뤄지고 있는 세상이다. 만약 어마어마한 금액을 현금거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범죄자일 가능성이 크다.

돈의 역사는 인류문명의 발달과 연계한다. 인류 최초의 화폐는 수메르인의 보리 화폐다. 이 화폐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남쪽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출현했다.

이후 표식이 없는 금속덩어리를 무게로 달아 상거래를 했고 기원전 15세기에는 중국 상나라에서 조개껍데기를 상거래 이용했다.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6세기경 리디아에서 사용됐다.

리디아 주화에는 귀금속의 양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누가 주화를 발행했는지 새겨져 있다. 오늘날 사용되는 거의 모든 주화는 리디아 주화의 후손이라고 보면 된다. 화폐는 인간이 고안한 것 중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 시스템이다.

1959년 만들어진 27 파운드 짜리 금괴. 현재 시세로 50만 달러가 넘는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화폐 박물관에는 10억 달러 지폐뭉치가 전시 돼있다. 캔자스 시티 연방은행 로비에 개설된 무료 박물관이다. 입장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국제선 공항 보안검색대 같은 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돈의 위력만큼 검색도 엄중했다.

50만 달러 상당의 금괴와 각종 동전 콜렉션, 경제에 관한 내용들이 전시돼 있었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 할 순 없었지만 방탄 유리벽 안쪽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10억 달러만큼 쌓아 놓은 전시물도 있었다.

전시장 한켠 유리창 너머 촬영 금지구역에선 오래된 돈을 분쇄하고 있었다. 기념품점에서는 폐기돼 분쇄된 지폐 뭉치를 비닐봉지에 넣어 기념품으로 줬다. 금괴와 달러뭉치, 폐기된 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야릇한 곳이었다.

분쇄된 돈은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