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마츠오 중좌는 1941년 12월7일 일요일 7시 52분 기함 아카기에 진주만 기습 성공을 의미하는 암호 ‘도라 도라 도라’를 타전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은 보고를 받고 “어쩌면 우린 잠자고 있던 거인을 깨웠을지도 모른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버드에서 유학했고 주미 일본대사관 무관을 지내 미국의 저력을 알고 있었던 야마모토는 미국과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군국주의 도죠 히데키 내각은 미국공격을 밀어붙였다.

일본은 제1 항공함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 제독 지휘아래 항공모함 6대, 전투기와 폭격기 423대를 동원해 하와이 오하우섬 진주만에 있는 미국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시켰다.

미군은 아무런 방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피해는 엄청났다. 하루 동안 공격에 2403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고 1178명이 부상했다. 전투기 149대가 지상 또는 함상에서 파괴됐다. 애리조나, 오클라호마,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네바다 등 전투함들이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텍사스주 주도 오스틴에서 서쪽으로 78마일 떨어진 프레드릭스버그시에 태평양전쟁 박물관이 있다. 텍사스 역사위원회가 관리하는 20 개의 주 역사 유적지 중 하나다.

12월 8일 연방 의회는 즉시 대일 선전포고를 결의했다. 군국주의 일본은 100여년전 자신들을 개항시킨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파멸을 자초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은 주변 국가를 침략하고 전쟁을 해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받았으며 각종 이권에 개입해 경제를 부흥시켰다. 하지만 1937년 만주사변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은 일본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일본의 중국 침공을 반대하던 미국은 1911년 이래 유지해왔던 미일통상조약을 1940년 파기했다. 1941년엔 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가 일본에 전략물자수출을 금지하는 일본 고립안을 형성시켰다. 국내 소비 원유의 80%를 수입했던 일본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와 청나라를 꺾었던 일본은 전쟁 한번 겪어본 적 없는 미 태평양 함대주력을 일거에 소탕해 기선을 제압한다면 미국이 저자세로 협상해올 것이라는 오판을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진주만 기습 10일 후인 12월 17일에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미국 태평양함대 최고사령관에 임명했다. 미국은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처했다.

니미츠는 진주만 기습에서 손상된 미국 태평양함대의 전력과 일본해군과의 차이를 극복하고 효율적으로 태평양 함대를 지휘했다.

1942년 4월 미 항공모함 USS 호넷에서 출격한 폭격기가 일본 도쿄를 폭격한 둘리틀 공습은 취약한 일본 본토를 공격함으로써 일본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미국민에게 사기를 올려주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초토화한 핵폭탄 케이스가 전시돼 있다.

태평양 지역, 남서태평양 지역을 니미츠와 맥아더가 각각 맡아 태평양전쟁을 수행했다.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군 함대 위치를 먼저 발견해 일본 항공모함을 공격했다.

일본에 대한 미군의 첫 승리였고 일본해군으로서는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임진왜란 해전 패전 이후 350년 만의 대패였다. 일본군은 9척 항공모함 중 4척이 침몰했고 항공기 300대가 파괴됐으며 우수한 조종사들이 전사했다.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에 재기할 수 없는 결정타였고 전세는 미국에 유리해졌다. 야마모토 제독은 과다카날로 후퇴했다가 1943년 4월 18일 북부 솔로몬제도 전선 시찰중 암호를 해독한 미군 전투기에 의해 저격당해 사망했다.

니미츠와 맥아더 장군은 광활한 태평양상 일본 점령 섬들을 하나 둘씩 탈환하는 개구리 뛰기식 작전으로 일본 본토를 향해 포위해 들어갔다. 니미츠는 1945년 초 괌과 이오지마, 그리고 오키나와섬에 대한 총공세를 취해 섬들을 차례로 점령하고 일본 본토 공격을 준비했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다. 9월 2일 미주리호 함상 항복서명식에서 미국 정부 대표로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고 합의문서에 서명했다.

니미츠 제독은 태평양 전쟁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둬 미국 해군역사상 첫 원수로 등극했다.

텍사스주 주도 오스틴에서 서쪽으로 78마일 떨어진 프레드릭스버그시에 국립 태평양전쟁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체스터 니미츠 제독 고향집을 개조해 1967년 2월 24일 개장했다.

우리 민족은 태평양전쟁으로 물적 인적 피해를 입었고 태평양 전쟁의 결과로 분단된 광복을 맞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반일감정이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박물관에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군국주의 일본의 야욕과 패망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엿볼 수 있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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