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 in America
나의 이민 이야기! 넥센타이어, 한국부터 미국까지 항상 함께 합니다! 

7월 4일 독립기념일 기념 넥센타이어 데이 이벤트!

미국이 자유와 독립을 쟁취한 날을 기념하여,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낯선 땅 이곳, 힘들고 기뻤던 우리 한인 이민자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민자로써 미국에 정착하기까지 겪었던 다양하고 진솔한 사연들을 모집합니다.
일상에서 겪었던 소소한 이야기, 좌충우돌 미국 생존 이야기를 마음껏 글로 풀어내 주세요.

넥센타이어 – 한국의 최고의 품질, 획기적인 기술로 개발된 당신의 안전을 지켜줄 넥센타이어를 준비했습니다.

Celebrating Fourth of July with Nexen Tire Day!

To celebrate the US and our roots, for the thousands of immigrants who have helped shape the country, Nexen Tire America is honoring the Korean & Korean American immigrants and communities here today.

Nexen Tire recognizes the journeys that our past generations have walked, through language barriers and cultural differences, to pave an easier road for many of us today.

That’s why we would love to hear your funny, touching, or heart-breaking immigration stories & celebrate this Fourth!

How To Participate  in both Korean & English! 
아래 댓글로 사연을 남기고 선정된 한 분께는 기존 타이어를 넥센타이어 새제품으로 교환해 드립니다!
7월 8일 부터 8월 4일 까지! 당첨자는 8월 6일에 이메일로 개별 통보 됩니다.

Comment below a story that you would share with the Korean and Korean American community!
The winner will receive brand new Nexen Tires (4x) for their car. Submissions are accepted from July 8th until August 4th, 2019. The winner will receive an e-mail on August 6th, 2019.

* 익명으로 참여하시기 원하시는 경우 가명을 사용하실 수 있으나, 이메일 주소는 현재 사용하고 계시는 연락 가능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수집된 개인정보는 이벤트 종료 후 파기됨을 알려드립니다. 참여자는 개인정보 수집/이용 대한 동의를 거부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이벤트 참여가 불가능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If you do not wish to have your name revealed in the story submissions underneath, please feel free to use a pseudonym. However, please provide the accurate e-mail address currently in use for us to contact you.
*Please note that the winner will be asked for a short interview upon receiving of the new tires.

11 COMMENTS

    • 안녕하세요, 참여 원하시는 경우 이곳에 댓글로 사연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익명으로 참여하시기 원하시는 경우 가명을 사용하실 수 있으나, 이메일 주소는 현재 사용하고 계시는 연락 가능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1. 한국을 떠나 2003년 6월 9일 오후 9시경에 뉴욕 케네디 공항으로 도착 했습니다. 뉴욕에서 3개월 정도 지내다가 엘에이로 이사 온 후 저의 실수로 신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후로 비행기로 다니는 여행 보다는 차로 다니는 여행이 많아졌고 여러 곳을 자동차로 다니며 많을 것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미국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혼자 20일 정도 다녀 온 로드 트립인데요. 엘에이에서 출발해서 서부 10개 주( 네바다, 아리조나, 유타, 콜로라도, 와이오밍, 몬타나, 아이다호, 워싱턴, 오레곤, 그리고 다시 캘리포니아)를 돌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주로 캠핑장 또는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음식도 해 벅고, 유명한 식당에 가서 혼자 식사도 하고, 멋진 국립공원과 주립공원들을 많이 보고 왔어요. 그중에 아치스 캐년은 정말 좋아서 3일간 머물러 있었습니다. 옐로우 스톤도 갔었지만, 저는 거기보다는 아치스가 더 좋더라구요.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몬타나에 있는 글래셜 공원을 못 가보고 왔습니다. 다녀와서 얼마 있지 않아서 지금의 예쁜 와이프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다행이 와이프도 여행을 좋아해서 이곳 저곳 많이 다녔습니다. 신혼 여행도 8일간 로드 트립을 했습니다. 그때는 오래곤에 있는 크래이터 레이크를 다녀 왔습니다. 너무나 멋진 곳이었죠. 지금은 와이프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장거리 여행은 못하겠지만 나중에 아이와 함께 여러곳을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입니다. 미국와서 참 안 좋은 일도 많았고 힘들었고 외로웠지만, 멋진 자연들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은거 같습니다. 한국처럼 아기자기한 것은 없지만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을 볼때면 미국에 온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2. 미국에 온지 1년이 넘어가는 19살 여자 학생입니다. 오로지 한 미국 대학을 바라보고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않은 채 중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토플을 친 뒤 대학에 왔습니다. 또래에 비해 1년 빨리 입학한 셈인데요. 와서 미국 친구들이랑 잘지내기도 했었지만 때로는 문화차이도 많이 다를 뿐더러 인종차별도 정말 많이 당했습니다. 지금 제 또래는 수능을 준비하는데요. 힘들겠지만 그냥 저는 한국에서 맛있는 한국음식 먹으면서 지내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요. 심지어 꿈에서도 자꾸 한국을 가요. 친구들은 미국에 있는 저를 부러워하는데요. 마냥 상상처럼 자유와 기회로 널려있는 스트레스 없는 생활은 절대 아니란걸 얘기하고 싶어요. 더욱이 제가 사는 곳은 시골이어서 한국 식당도 없고 그냥 아시아인 식당 자체가 없어요. 아시안 마트도 없구요. 음식이 제일 그립습니다. 거의 매일을 바쁘다보니 좋아하지도 않는 피자, 햄버거를 입에만 대며 살아야 합니다. 제가 결정한 일이지만 … 확실히 문화차이가 있는건 힘든일이고 고향을 떠나서 생활하는 것 부터가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해요. 와서 살도 많이 찌고 우울하네요

  3. 전 미국이민을 하와이에서 시작했습니다.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을땐 아무 걱정도 없이 마냥 신났었죠. 집 계약을 하고, 통장을 개설하고, 핸드폰을 개통하고, 어학원을 등록하고, 버스카드를 사고.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하다보니 한달이 훌쩍 지나가더라고요.
    하와이에 조금 적응이 되니까 서핑이 하고싶더라고요. 그래서 중고로 자전거와 서핑보드를 사서 와이키키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땐 친구가 없다보니 혼자 바다로 나가서 소지품들을 모래에 묻어두고 서핑이 끝나면 다시 파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여느때처럼 서핑이 끝나고 다시 소지품을 가져가려고 모래를 팠는데 제 소지품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지갑, 핸드폰, 집키, 버스카드 전부 사라졌습니다. 저는 절망했습니다. 당시 그것들이 제 전재산이었거든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집까지 걸어와서 아무 기대없이 나의 아이폰 찾기를 켜봤는데 와이키키에서 한시간 떨어진 곳에 제 폰 신호가 잡히더라고요. 제 폰으로 전화도 걸고 문자도 남겨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폰을 가져간 사람이 아무 와이파이나 연결하기를 바라며 일부러 폰 잠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폰이 와이파이에 연결되는 순간 그 폰의 정확한 위치가 뜨거든요.
    그리고 정말 그 사람이 제 폰을 와이파이에 연결했고 제 폰의 정확한 위치가 뜨게되어서 제 소지품 전부를 무사히 찾아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해변에 금속탐지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도 금속탐지기로 제 폰을 찾아서 파서 가져간 것이었죠.
    그땐 너무 당황스럽고 서러웠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경험이었네요.
    중고차 처음 사서 3일만에 엔진경고등에 불이 들어오는 황당한 경험도 있었는데 여기까지만..

    •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12학년 되는 고등학생입니다. 중국생활 7년 4개월, 한국생활 8년3개월, 그리고 미국 생활 2년 6개월차 입니다. 3개국에서 잘 적응한 제 스스로에게 기특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어요. 저는 2001년 중국인 중국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중국인이시고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세요. 어머니가 중국어를 잘 하셔서 태어나서부터 2008년 가을까지 쭉 중국에서 살다가 부모님이 이혼 하시는 바람에 저는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갔어요. 한국어 한마디도 못하는 저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어린이집에 가서 4~5개월간 한국어를 배우고, 2009년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국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그때 말도 잘 못하는 저랑 놀아준 친구들도 많았지만, 학교에 한국어 못하는 친구는 저 밖에 없었기에 짱X라는둥, 네 나라로 돌아 가라는둥..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 나중에 아무리 말을 잘 해도 1~2년안에 억양을 고치기엔 쉽지 않더라고요 ㅠㅠ 그래도 그 시기를 잘 극복하고 나니까 초등학교4학년때 부터는 아이들도 성장했고, 저도 억양을 고쳤기에 그 이후로는 너무 행복한 한국 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잘 다니다가 2016년 엄마가 한국계 미국인이신 지금 새아빠를 만나셔서, 그해 겨울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행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미국에 가서 또 놀림 받진 않을까 생각도 많이 했고, 언어문제를 또 어떻게 극복해야하나 걱정도 많았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까 그런게 전혀 없더라고요. 학교 ESL수업시간, 일반 수업시간 등등 저를 영어 못 한다고,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놀리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더 잘 해주고 제 부족한 영어에도 경청 해주는 모습에 안심하고 다닐 수 있었어요. 그런 환경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제 ESL 수업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이 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했고 나만 못 알아듣고, 나만 모르는 즐거운 상황들, 그런게 생기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나는 이 반에 있는데 다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니까 소외감도 들더라고요. 그랬던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다 저에게 피가되고 살이 되더라고요 ㅎㅎ 그리고 지금은 그 친구들에게서 스페인어를 배워서 쉬운말 사용하면서 인사하고, 음식점에서 스페인어로 타코 주문도 하게 되었어요 ㅎㅎ
      이렇게 두번의 이민 생활에 잘 적응한 제 스스로에게 너무 고맙고, 저를 위해 항상 고생하는 어머니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쯤은 어디에라도 제가 조금 힘들었다는걸 얘기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잘 적응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것도.. (이름은 제 별명으로 할게요. 제가 어렸을때 하도 까무잡잡해서 저희 엄마가 지어주신 별명이랍니다!ㅋㅋㅋ)

  4. 안녕하세요. 미국 샌디에고에서 3년째 거주하고 있는 주부입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때는 1년만 생활하고 돌아갈꺼라 예상했는데 1년에서 반년이 늘어나고 또 1년이 늘어나고 이러다보니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미국에 정착하면서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애리조나로 여행을 갔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하고 비행기 타고 샌디에고로 돌아온 사건입니다. 저의 과실로 인해서 자동차 사고가 났고, 다행이도 인명피해는 없었어요. 그래도 차 사고가 크게 난 편이라서 경찰도 부르고 경찰에게 사고난 상황을 설명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상대방 차주분 친구분이 우리에게 티켓을 발부하라고 항의까지 했답니다. 하지만 경찰분께서 운전면허증, 자동차 등록, 자동차 보험 모두 정확하게 갖고있고 사고에 대한 설명도 정확하게 하고 협조적이기 때문에 본인은 저희에게 티켓을 발부하지 않겠다 라도 말씀해주시면서 하지만 다른 경찰의 경우에는 발부 할 수 있다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사고 수습을 위해 렉카차를 부르고 근처 가까운 센터로 차를 옮겼습니다. 자동차 수리 견적 결과 저희 차를 수리하려면 드는 비용과 수리하는데 드는 기간, 차를 수리하고 샌디에고에서 받으려면 드는 비용이 상당히 들어서 사고난 차를 고쳐서 불안하게 타고 다니는 것 보다, 중고차를 구입해서 타고 다니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 폐차를 결정했습니다. 차를 구입한지 1년도 안된 시점에서 폐차를 하려니 날리는 돈이 많이 아까웠지만 인명피해 없이 자동차만 날린 것을 감사히 생각하면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답니다. 지금 구입해서 타고 있는 차는 큰 사고 없이 오랫동안 잘 타면 좋겠어요. 마침 지금 차의 타이어를 바꿀 타이밍인데 넥센타이어로 바꿀 수 있으면 작년에 자동차 사고의 아픔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5. 안녕하세요?

    미국 온 지는 어느덧 20년이 다된 30대 초반 애기 엄마입니다. 미국으로 올때 제 나이는 갓 초등학교 5년을 마쳣고. 그때당시 한국 IMF가 있었고. 또 제가 다니던 학교에선. . 영어교육이 학교에서 이제 막 시작할때라 전 알파벳 하나도 배우지 못한채 낮설은 땅으로 왔습니다. 학교 시작하기 전 예방접종 문제로 첫 2달른 친구도 없이 집에서 방콕만하고. 친구를 워낙 좋아하던 성격이라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첫 미국생활 2달만에 middle school 6학년으로 학교를 다니게 됏습니다. 앞에도 말햇듯이 영어 한마디 뿐만 아니라 알파벳도 모르던 제가 수업시간 중 화장실이 급해 소변으로 보러 가야했는데… 화장실을 영어몰라서.. 오로직 아는 단어 하나 “pee pee” “pee pee” 를 외치다가. 겨우 겨우 화장실을 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직도 생각 하면 창피고 웃긴 이야기 이네요. ㅋ 나름 중학생 여자 아이엿는데. ㅋㅋㅋㅋ 하지만 지금은 영어도 나름 잘 하고 여기서 잘 적응하면서 살고 입답니다. ㅋ

  6. 미국이 자유와 독립을 쟁취함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올 수 있게 되고 기회의 땅으로 까지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자유를 통해, 저희 가족 또한 기회를 잡으러 이민 온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미국에 오면 땅이 넓어 비행기로 이동할 것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막상 와서 생활하다보니, 차로 이 곳 저 곳 다니는 것이 효율적이고 편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국에 처음와서 근교로 바람을 쎄러 갈 때 마다, 엄마께선 고속도로를 타지 못하시고 저는 운전을 하지 못해 항상 아버지께서 하셨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고, 아버지와 둘이서 그랜드캐년, 라스베가스등으로 (대부분 처음 갈 때 사용하는 루트)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께선 제가 운전을 함으로, 서로 번갈아가며 할 수 있어서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조수석에서 운전하는 절 보며 기쁨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도 피곤하고 힘드셨지만, 미국 생활하면서 힘들어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한 번도 불평, 불만하지않고 저희의 여정을 책임져주신거구나 느꼈습니다. 한국에선 대부분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미국에선 차가 없으면 생활을 못 할 정도로 자동차가 중요합니다. 지금 저희 아버지께선 택시 운전자로써 즐거이 손님들을 태우십니다. 그러면서 자동차는 저희의 밥 줄로써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희 가족의 밥줄인, 자동차에게 좋은 바퀴를 선사함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싶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새로운 바퀴와 함께 더 많은 이민자를 태우고 그들을 안전히 도착지까지 데려다주며, 그들에게 위로를 선사해드리길 소망합니다.

  7. 창조주가 허락하신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를 자명한 진리로 받아드리며 독립을 선언했던 독립기념일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던 철 없는 10대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온다. 그저 한낱 학교 ‘안 가도 되는 날’로 생각하며 친구들과 뭐하고 놀지만 궁리했던 10년 전 나를 돌아보면 참 단순하고 명랑한 여느 여고생이였구나 생각이 든다. 히스패닉과 흑인이 다수였던 학교였지만, 감사하게도 별 탈 없이 다같이 잘 지내며 무사히 이 나라에 적응을 했던 것 같다. 가끔 성적표에 “Hanna talks too much” (한나는 말이 많아요) 라며 선생님의 경고도 받고 다른 선생님께선 어디서 “미쳤어” 라는 한국말을 배워오셔서 “Hanna the Michoso” 라고 별명을 지어주실 때엔 ‘아시안은 쑥쓰러움이 많고 조용하다’라는 고정관념을 조금이라도 깬 것 같아 쓸데없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선생님들과 말도 안되는 영어지만 냅다 질르는 영어로 농담도 하며 재밌게 학교생활을 한 것 같다. 이 모든 학교생활과 나라는 한 개인이 누리던 것이 이 나라가 존재함에, 그리도 전 세대의 노력과 희생이 있음에 가능했다라는 것을 그때의 난 알지도 아니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US History 선생님께서 열변을 토하시며 미국의 독립을 말씀하신 기억이 있는 데 그 당시의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 데 선생님의 표정과 침을 튀겨가시며 설명하시 던 그 분의 열심은 기억이 난다. 이젠 조금이나마 선생님의 그 감사하시는 마음과 아이들이 알았음 하시는 간절한 마음을 알 것 같다. 행복한 고등학교 생활이 마무리되어 지고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집에서 독립을 하게 된다. 집과 멀어 차가 없던 나는 차가 있는 친구가 필요했는 데 한 친구가 가는 길이라며 내가 집 갈 때마다 라이드를 자처했다. 어릴 땐 지리를 몰라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보니 우리 집보다 50분 더 동쪽에 있는 집에 사는 친구였다. 빠른 전개이지만 이 친구는 8년 뒤 남편이 되었다.
    대학생 시절의 남편의 차는 오래된 차여서 엔진 소리가 커 프리웨이를 탈 때면 서로 소리를 내지르며 대화를 해야 했지만 서로의 이민 생활, 가족, 신앙, 꿈, 미래 등등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나와 그 친구는 어느새 함께 미래를 얘기했다. 이 착한 친구는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고 해박했는 데 미국이 어떻게 생긴 나라이고 현 세대들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 지 얘기해주었다. 침 튀겼던 고등학교 US History 선생님의 얼굴만 기억하는 나는 나의 무지함에 부끄러워 하며 이 친구와 함께 역사를 공부하고 점점 더 기적의 나라에서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권리들이 참으로 감사한 것임을 착한 운전남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의 이민생활은 별 거 없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이지만, 그저 별 생각과 계획 없던 해맑은 여고생이 자라나고 성숙해 질 수 있도록 도와준 성적표 선생님, Michoso 선생님, 그리고 누구보다 그 착한 친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오늘 난 그 친구에게 8년 전 너무 고마웠다고 선물하고 싶어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남긴다. 설레는 그 때 그 시절의 마음으로 타이어를 선물하면 참 좋을 것 같다.

  8. 안녕하세요,

    7월 넥센타이어데이에 참여해주시고 이민 사연을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먼 땅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땀 흘리시는 여러분 모두를 넥센타이어와 중앙일보가 응원합니다!

    당첨여부는 이메일을 통하여 확인 가능하십니다.
    선택된 사연과 기사는 곧 7월 넥센타이어데이 댓글란을 통하여 공지될 예정이니, 꼭 확인 부탁드립니다.

    다음 넥센타이어데이, 8월도 많은 기대와 참여 부탁 드립니다.
    http://plusnews.koreadaily.com/nexen-event/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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