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내륙을 통해 알래스카를 향할 때 얘기다. 알래스카로 향하는 캐나다 내륙은 몇몇 작은 도시와 마을을 지나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 펼쳐져 있다. 태고의 모습이다. 두 달 가까운 여행 끝에 로키산맥을 넘어 캐나다 캘거리에 도착했다. 일생을 통해 다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드라마틱한 여정이었다. 며칠간 캠핑을 하며 축제도 관람하고 캘거리 시내를 돌아봤다. 도시 한가운데 솟아 있던 캘거리 타워가 새로 들어선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생성과 사멸을 반복하는 게 자연의 순리지만 스카이라인을 바꿔 놓은 인위적 세월이 왠지 야속했다.

그레이셔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 RV정비와 생활용품 등을 준비했다. 그레이셔 국립공원 지역에서 RV캠핑 자리를 찾으려면 점심 전에 도착해야 한다. 까다로운 미국 국경 통과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것도 난관이었다. 최대한 일찍 국경검문소에 도착하는 게 중요했다.

이른 아침 출발할 요량으로 전날 캘거리 외곽 월마트에 도착해 밤새 주차를 허락받고 주차장 외곽 다른 RV들 근처에 세웠다. 바로 옆 작은 트레블 트레일러 RV에 40대 중반의 동양인 부부가 보였다. RV여행을 하면서 RV로 여행하는 동양인도 보기 드물지만 트레블 트레일러를 이용해 여행하는 동양인은 처음이었다.

철도공사 때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던 철물점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경계심도 금세 풀어지고 잠시 서로의 여행 얘기를 했다. 중국인 부부는 캐나다 동부 노바스코시아에서 밴쿠버까지 캐나다를 횡단하는 중이었다.

3년 전 취업이민으로 캐나다에 입국해 계악기간을 무사히 채우고 영주권을 받아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밴쿠버로 이사가는 중이었다. 보다 나은 삶을 개척하기 위해 중국본토에서 캐나다 동부까지 다시 대륙을 횡단해 꿈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이민자의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웬만한 도시에 한국사람 없는 곳이 드물고 마켓에 김치와 한국라면이 있지만 미국 오지에도 있는 중국 음식점과 중국인에 비할 순 없다. ‘바닷물 닿는 곳에 화교가 있다’는 말처럼 전세계에 차이나 타운이 산재해 있고 화교들이 많다, 특히 아시안 차별이 심했던 미국에 정착한 중국인들의 생활력이 놀랍다.

미국의 중국인 이민 역사는 중국에서 일어난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이후 대기근에서 비롯됐다. 1849년 미국 서부 새크라멘토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고 골드러시가 일어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1852년까지 2만5000명이었던 중국인이 1880년에는 10만5000명으로 늘어났다.

기차박물관에는 다양한 기관차와 당시 철로공사에 대한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골드 러시가 끝나자 대륙횡단철도 부설 현장에서 노동을 했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중 의회의 동의를 얻어서 유니언 퍼시픽과 센트럴 퍼시픽 철도 회사에 철도 부설공사를 발주했다. 서부구간을 맡은 센트럴 퍼시픽 철도회사는 인력난으로 캘리포니아주의 새크라멘토에서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를 잇는 1756마일의 철도공사에 중국인부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도 가장 험난한 준령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중국인 인부들이 곡괭이, 도끼, 삽, 망치 등 기본적인 도구로 공사를 이어갔다. 철도 공사로 수많은 중국인이 죽었다. 대륙횡단 철도는 만리장성을 쌓은 끈질긴 중국인들이 성취한 업적이다. 공사가 완공되고 약 2만5000명의 중국인 철도 인부가 실직당했다.

당시 미국도 불경기가 심해지자 중국인 배척 운동은 더욱 심해졌다. 특히 콜로라도, 와이오밍 등에서는 중국인들의 집단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1882년에는 중국인 이민자의 수가 12만5000명이 넘어서자 의회에서 중국인 배척법이 통과되었고 이민은 일체 중단됐다.

중국인 철도노동자들이 정착한 차이나 타운의 모습.

지금도 중국인 배척법은 흑인 노예제도와 더불어 미국의 큰 오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에서 중국인은 한국인, 일본인보다도 더 많은 차별과 학대를 받았다. 그 당시 중국인 집단 거주지가 지금의 차이나타운으로 발전했다.

새크라멘토는 중국인들이 처음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북동쪽 90마일 거리에 위치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6번째로 큰 도시로 골드러시 주무대면서 대륙횡단 철도의 시발점이다. 올드 새크라멘토에는 개척시대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사적지로 지정된 50여 채의 골드러시 당시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올드 새크라멘토는 1850년대부터 샌프란시스코, 태평양까지 운항하던 선박의 선착장이 있었다. 그 주위로 자연스럽게 상업, 주거시설이 들어섰다.

올드 새크라멘토에는 황금빛 도개교인 타워 브리지도 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철도박물관이 있고 대륙횡단열차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던 헌팅턴&홉킨스가 운영했던 철물점, 역마차로 금과 돈을 실어 날랐던 웰스파고 은행박물관, 큰 배가 지나다닐 때면 상판이 오르내리는 도개교 타워 브리지도 있다.

철도박물관에는 중국 노동자들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올드 새크라멘토 인근에는 중국인 철도 노동자들이 정착한 차이나 타운이 있다. 이 곳에서 이민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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