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리 기러기가 무리 지어 날아가다 한 마리는 동쪽으로 날아가고, 또 한 마리는 서쪽으로 날아가고, 나머지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다. 나는 충격 요법을 받은 후 잠과 현실 사이의 불완전한 경계선이랄 수 있는 흐리멍텅하고 혼란스러운 안개의 세계에 살았다. 빛과 어둠사이, 혹은 잠과 깨어남의 사이, 아니면 생과 사의 흐릿한 경계에서 살았던 것이다. 더 이상 무의식의 상태는 아니지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내가 누구인지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깨어날 이유가 없다면 그런 흐릿한 세계에서 오랫동안 취한 듯 멍한 상태로 방황할 수 있다.”

1960년초 스탠퍼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켄 키지는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향군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이 병원에서는 정신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LSD를 실험 목적으로 투여하면서 그 결과를 관측하던 중이었다. LSD는 정신병을 치료하는 보조약으로도 연구됐다. 지각 전반과 정서, 기억, 시간, 경험 등을 강력하게 왜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에는 정신분열증 환자 치료를 위해 사용됐다.

켄 키지는 LSD의 환각이 창작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LSD를 비롯한 몇 가지 환각제를 이용해 정신 상태를 변화시키는 실험에서 대상자로 직접 참가했다. 그리고 직접 향군병원 정신과 병동의 간호 보조사로 야간 근무를 자원했다. 이 병원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1962년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를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원을 무대로 환자들과 병원 기간요원들 사이에 전개되는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오리건 정신건강 박물관은 130년 동안 정신병원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1960년대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적인 인식이 만연했고 인종차별 등의 사회적 제약과 억압이 존재하던 시대였다. 젊은이들은 이런 보수적 사회체제에 저항해 자유와 자연주의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전통과 사회규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약물 남용, 성 개방, 반전을 통해 반항하던 히피세대였다.

켄 키지는 소설에서 억압된 자유와 강요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신병원의 관리체제를 통해서 당시 미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을 비판하고자 했다.

이 소설은 1963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고 1975년에는 영화화돼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다섯 개 부문에서 상을 탔다.

소설 속 인물 맥머피는 폭력, 도박으로 6개월 수형생활을 하다 편하게 지낼 요량으로 정신병자인척 입원한 가짜 환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는 감옥보다도 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정신병원에 적응하지 못했다. 맥머피는 병원 규율에 대항하고 병동책임자인 수간호사는 맥머피의 선동을 못마땅해 했다. 맥머피의 선동으로 다른 환자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체험한다.

박물관에는 구식 기계 및 역사적인 유품이 많고 과거 치료법도 볼 수 있다.

자발적으로 입원해 퇴원도 원하면 할 수 있는 다른 환자와 달리 맥머피는 위탁환자이기 때문에 수간호사가 퇴원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맥머피의 반항은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맥머피는 뇌 전두엽 절제수술을 받아 식물인간이 되고 맥머피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다른 환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뻐꾸기 둥지’는 속어로 정신병원을 의미하지만 뻐꾸기 둥지는 현시대에 정형화되고 억압된 우리의 삶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촬영된 오리건의 주도 세일럼시에 있는 오리건주 정신건강 박물관을 방문했다. 정신건강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오리건 주립 정신 병원은 1883년에 문을 열고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환자들을 수용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촬영될 당시의 자료들.

법원명령으로 강제수용된 케이스가 대부분인 환자들은 의료진과 직원들로부터 영화에서처럼 전기충격요법, 전두엽수술 등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학대를 받아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오리건주는 2004년 다른 곳으로 병원시설을 이전했다. 2012년 10월 6일 박물관을 열어 병원의 오래된 자료를 일반공개하고 있다.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서 자연스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자유와 갇혀있는 뻐꾸기가 된 영화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