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새크라멘토에서 터를 일구고 사는 지인으로부터 핵을 버리고 태양을 선택한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새크라멘토 동남쪽으로 25마일 떨어진 랜초 세코에 있는 폐원전이다. 바로 근처에 새크라멘토 전력국(SMUD)에서 조성하고 운영하는 유원지 겸 캠핑시설도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 랜초 세코를 향하는 길은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농촌이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넓은 포도밭과 목장 풍경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멀리 포도밭 주변으로 두 개의 냉각탑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길을 따라 가까이 가보니 철조망 너머로 흉직한 냉각탑과 전기 발전용 태양광 집전판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포도밭과 목가적인 목장풍경 사이에 황량하게 자리잡고 있는 랜초 세코 폐원전의 냉각탑.

폐원전을 옆으로 돌아 들어가면 인공호수가 보이고 낚시터 등 위락시설과 캠핑장이 나온다. 마침 휴일이라서 그런지 많은 인파가 몰려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랜초 세코 폐원전은 지난 2009년 해체와 정화작업을 완료했다. 그러나 미국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없어 핵연료봉 493개를 발전소에 건식저장하고 연간 600만 달러를 들여 방사능 수치를 감시하면서 24시간 관리하고 있다. SMUD는 랜초 세코 원전 폐기 후 태양광 발전단지와 천연가스 발전소를 건설했다. 폐쇄된 원자력발전소, 가스발전소, 태양광발전소가 한 곳에 들어서 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75년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이경원 기자의 랜초 세코 원전 비리 고발 기사였다. 1974년 말 이경원 기자가 랜초 세코 원자력 발전소의 한 직원으로부터 제보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랜초 세코 발전소의 고위 임원들이 발전소 자재를 빼돌려 자신들의 집을 짓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핵발전소가 폐쇄되고 만들어진 공원에는 31곳의 캠핑 자리와 피크닉 테이블 등이 있다.

유니언지 탐사보도팀은 20여 회에 걸쳐 랜초 세코 원전 비리 기사를 게재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설계, 건설하고 발전기를 납품한 벡텔사와 SMUD의 비밀스러운 거래 내용이 밝혀졌다. 부패한 공무원들과 기업의 유착으로 막대한 주민들의 세금이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1974년부터 원전을 가동했지만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다.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건설될 당시는 오염이 거의 없고 비용도 적게 드는 꿈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았지만 1970년대 들어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쓰리 마일 아일랜드 원전사고’가 터지고 10만 여명의 주민들이 대피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던 미국에서 일어난 사고였기에 미국민들의 충격은 컸다.

그리고 1986년 4월 26일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참사가 일어났다. 원전 사고 공포에 주민들이 나서서 랜초 세코 원전 폐쇄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1989년 6월6일 주민투표에서 53.4%가 폐쇄에 동의해 바로 다음날 폐쇄가 선언 됐다. 랜초 세코 원전은 가동한 지 15년만인 1989년 영구 폐쇄됐다.

핵 발전소 조기 폐쇄에 따른 손실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1킬로와트당 1센트씩 전기요금을 더 내서 충당하고 있다. 새크라멘토 시민들의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데에는 이경원 기자의 역할이 컸다.

한국의 현정부는 탈원전의 기치를 내걸었다. 탈원전을 반대하는 측은 전기요금 폭탄은 필연적이며 앞당겨질 원전 시대의 종말과 해외 원전 포기는 국가적 자해 행위라고 주장한다. 현정부의 탈원전은 어설픈 ‘대선 공약’이었을 뿐이라는 것.

랜초 세코 호수는 1970 년대 초 핵발전소 비상용 냉각수 공급원의 역할을 하는 인공 호수였다.

하지만 그린피스와 한국환경운동연합이 밝히는 한국의 원전실태는 충격적이다. 전 세계 원전 밀집도 1위, 원전 30km 반경 내 인구수 세계 1위다. 한국에 있는 25기의 원전은 고리 7기, 월성 6기, 한울 6기, 한빛 원전단지에 6기가 집중되어 운영되고 있다.

전 세계 초대형 원전 단지 11개 중 1/3 이상이 한국에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한국은 세계 유일 초대형 원전 단지 국가다. 한국의 초대형 원전 단지 주변 30km 내 인구 밀집도는 전 세계 최고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사고 지점 30km 내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체르노빌, 후쿠시마도 피난구역을 30km로 설정했다. 고리 원전 인근 30km 내에는 부산, 울산, 양산 등에 380만 명이 살고 있고 부산항, 울산 현대 조선소, 현대자동차, 울산 석유화학단지, 해운대 등 한국 경제 핵심 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당시 30km 반경 내 인구 17만 명과 비교하면 고리는 후쿠시마의 무려 22배다.

세상에 완벽한 기술은 없다. 원전의 재앙을 염려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크라멘토 랜초 세코 원전의 선택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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