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민권 박물관 National Voting Rights Museum

6 US-80 BUS, Selma, AL 36701

몽고메리는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이 있어 한인이 많이 산다. 몽고메리 다운타운 동쪽 지역에 한국마켓과 한국식당, 한국상점들이 있다. 작은 한인타운이다. 한인이 드문 지역을 다니다 한인마켓이나 한인상가를 만나면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다. 한식의 얼큰한 맛을 생각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침이 넘어간다.

1965년 흑인민권운동 시위대가 지나갔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몽고메리는 불편없이 지낼 만한 곳이었다. 한식도 먹고 식자재도 보충하고 솜씨 좋은 한인 미용실에서 머리도 자르고 며칠을 지내며 재충전하고 출발했다. 가는 길에 1965년 흑인 민권운동이 일어났던 셀마시를 경유해 가기로 했다. 앨라배마 주도 몽고메리에서 80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50마일 떨어진 셀마로 이동했다. 1965년 3월 7일 흑인민권운동 시위대가 지나갔던 역사적인 장소인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앞에 있는 셀마 민권박물관과 주변 공원을 돌아봤다. 1955년 12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 사건이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셀마 민권박물관의 자료들.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승차거부와 파업 시위가 이어졌다. 흑인인권단체와 마틴 루터 킹목사 주도로 버스 보이콧 운동이 펼쳐졌다. 1년여의 투쟁 끝에 버스 좌석 흑백 분리가 불법이라는 연방 대법원 판결을 얻어내고 버스 보이콧 운동은 막을 내렸다.

몽고메리에서 싹을 틔운 흑인민권운동은 몽고메리에서 50여마일 떨어진 셀마에서 불이 붙었다. 킹 목사는 1963년 8월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에서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했다.

존슨은 대통령 취임 직후 ‘인종차별 철폐’를 반대하는 의원들을 만나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자”고 설득했다. 결국 1964년 7월 2일 민권법에 서명해 공표했다.

1965년 당시 앨라배마주 셀마의 흑인들은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피의 일요일’ 기념공원.

미국에서 흑인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것은 1870년이었다. 그러나 남부 지역의 대다수 주 정부는 투표를 하려는 흑인들에게 투표세를 내도록 했다. 현재 화폐 가치로 20달러가량인 투표세는 남부 백인들이 노예 출신 흑인의 참정권을 막으려는 꼼수였다.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의 각주는 ‘문맹 검사’를 실시해 참정권을 박탈했다. 문맹 검사는 투표를 하려면 최소한의 기본 지식은 갖추어야 한다는 이유로 시험을 치르게 한 제도였다. 흑인들은 투표에 배제됐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1965년 3월 7일 600여명의 흑인 민권운동 시위대가 80번 국도를 따라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향했다. 피의 일요일로부터 3주 전 2월 18일 한 백인경관이 인권 시위 중인 지미 리 잭슨에 발포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지미 리 잭슨 발포 사건 항의와 주지사 면담을 위해 몽고메리까지 행진하기로 했다. 이들이 몽고메리로 가기 위해서는 에그몬드 피터스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러나 주경찰이 곤봉과 최루탄 등으로 무장한 채 시위대를 강제 진압했다.

마을 입구의 조성된 기념공원의 벽화.

두 번째 행진은 3월 9일 킹 목사가 주도했다. 이날 참가한 시위대는 약 2500명 정도였다. 세 번째 행진에 겨우 주의사당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로자 파크스의 버스 보이콧 운동 이후 10년 동안 이어진 민권운동을 통해 민권법과 투표권법이 제정되었다. 제도적인 인종차별이 없어졌다.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이어지는 길은 국립 역사길로 지정됐다. 셀마로 가는 80번 국도의 주변은 인적도 차량도 드물었다. 가끔 만나는 흑인 거주지들은 폐허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지붕도 없는 허물어진 집앞에 쭈구리고 앉아 있었다. 차를 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희망을 잃은 눈빛들을 스쳐 지났다.

셀마시는 마을 중심 몇블록을 빼고는 슬럼화 돼있었다. 퇴색한 과거의 흔적을 가진 마을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다. 셀마는 1965년에는 인구 3만5000명에 백인인구가 69.2%인 백인 지역이었다. 2016년 센서스는 인구 1만9000여 명에 78%가 흑인이고 백인은 18%였다. 역설적이지만 셀마는 백인과 흑인인구가 반전된 흑인 마을이 됐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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