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의 농구리그 NBA. 최근에는 NBA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데이터를 통해서 과학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분석하는 ‘데이터 농구’가 일반화 되고 있는 것. NBA 30개 팀에 모두 데이터 분석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100여 명이 넘는 데이터 애널리스트가 NBA 경기들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 분야에도 한국인은 있다. NBA 유일의 한국인 전력분석관 김재엽씨다. 최고의 인기구단 LA레이커스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한국에서 자라 온 평범한 남자아이’였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레이커스에서 데이터를 다루게 됐을까?
UC버클리 농구팀 최초의 데이터 애널리스트
청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했다.’ 본인이 말하듯이 한국에서 태어난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인턴을 경험하고 앞으로 직장생활을 생각하자 정해진 길을 가기 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큰 무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스포츠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죠.
특히나 당시 새로운 분야로 커나가고 있었던 스포츠 데이터 분야에 매력을 느꼈어요.
이런 꿈을 이루려고 하면 선택은 하나 밖에 없었죠. 미국으로 오는 것.”
그렇게 그는 UC버클리로 유학을 오게 됐다. 막연히 스포츠 데이터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영화와 만나게 된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이다. 야구에서 처음으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인물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래틱스 단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빈 단장이 데이터를 이용해 구단을 운영하는 모습을 영화를 통해서 봤고 데이터 애널리스트로서 일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품게 됐다.
UC버클리 농구팀에서 일을 하면서 코치들의 신임을 얻었다. 코치들에게 데이터 애널리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결국에 그는 UC버클리 농구팀 최초의 데이터 애널리스트가 됐다.
“버클리에서 일하는 동안 코치는 물론 선수들과도 많은 교감을 나눴어요.
그렇게 얻은 신뢰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됐습니다.
스포츠계는 의외로 작은 세계라 인맥이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코치님의 추천을 통해서 여러 NBA 팀과 면접을 볼 수 있었죠.”
데이터 애널리스트의 균형
데이터를 이용해서 스카우팅 리포트를 만들고 프로그래밍 시험을 보는 등 다양한 절차를 거쳐서 LA 레이커스에서 일하게 돼 현재 2시즌째를 보내고 있다. 데이터를 통해서 레이커스 선수들에 대해서 평가는 물론 레이커스가 영입하려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분석을 한다. 한창 NBA가 진행되는 시즌이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씨는 데이터 애널리스트로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고 말했다.
“제가 데이터를 통해서 분석한 것이
항상 정답이라고 할 수 없죠.
제가 제시하는 것들이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하는 코치들에게
중요한 자료긴 하지만요.
데이터에만 몰두하지 않고 현장과의 소통을 해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을 할 때 다른 균형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학교 농구팀에서 일할 때는 현재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는 제이린 브라운 등 선수들의 훈련도 도와주며 허물없이 지내기도 했지만 레이커스에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 선수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본인의 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 최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하기 위해서 선수들과는 말조차 섞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스포츠팀에서 일하는 것과 일반적인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다른 것은 일을하는 목표다. 스포츠 팀에서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맡고 있으면 돈을 버는 것이 아닌 팀의 승리를 위해 일하게 된다. 당연히 팀이 경기를 지면 실망하는 등 팀에 대한 애착도 커지고 있다고.
스포츠로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
스포츠 분야에서 데이터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앞서 말했던 ‘균형’이라는 말이 다시 한 번 나왔다. 농구에 대한 지식과 데이터에 대한 지식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데이터를 잘 다루고 프로그래밍에 능한 사람이 점차 더 대우를 받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스포츠 팀에 합류하고 나서는 농구에 대한 지식까지 갖춘 사람만이 업무를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재미를 느끼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에는 단장이 되고 싶다는 꿈도 전했다. 왜 단장이 되고 싶냐고 묻자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빈 단장의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빌리 빈은 단순히 팀을 운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통해서 ‘약자들의 반란’이나
‘데이터를 통해서 편견에 맞서는 일’과 같은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한 거죠.
저도 팀을 구성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장이 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 조원희 기자
촬영/편집 송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