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 ‘헬보이’ ‘판의 미로’ ‘크림슨 피크’ 등으로 유명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집은 전 세계 영화팬들이 평생 한 번쯤은 방문해 보고 싶어하는 꿈의 공간이다. 그냥 세계적 감독이니까, 유명인 집이니까, 얼마나 잘사나 구경가보자 수준이 아니다. 영화팬들, 특히 호러 장르 마니아들과 코믹북 팬들에게 있어 델 토로 감독의 집은 ‘성지’나 마찬가지다.
델 토로 감독은 할리우드에서도 유명한 호러 영화 괴수물, 코믹북 ‘덕후’다. 어려서부터 이와 관련된 온갖 책, 그림, 피규어, 장식품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해 온 어마어마한 컬렉터이기도 하다. 영화감독으로 대성공한 지금의 컬렉션이 박물관 한 개 쯤은 거뜬히 차리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해졌으리란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 프랑켄슈타인 마네킹 부터 유명 공포 소설 작가들의 인형, 희귀한 로봇 피규어와 괴물 인형, 인간 몸 속 조직을 도려내 유리 안에 담아 놓은 듯한 아이템, 상상 속 동물의 뼈를 발라 놓은 듯한 전시품, 하나에 수천달러를 호가하는 만화책 원본 등 그야말로 세상 해괴망측하고 무시무시한 것들은 전부 다 모아놓은 듯한 곳이 바로 델 토로의 집이다. ‘성덕(성공한 덕후)’도 이런 ‘성덕’이 없다.
하지만 델 토로 감독의 컬렉션을 그저 취미 생활만으로 치부해 버리는 건 너무도 무식한 짓이다. 2013년 그가 발간한 책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노트(영문제목 Guillermo del Toro Cabinet of Curiosities: My Notebooks, Collections, and Other Obsessions)’에서도 엿볼 수 있듯, 델 토로의 집을 가득 채운 컬렉션은 언제나 그의 창의력의 원천이자 영감의 시작점이었다.
팀 버튼과 더불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기괴하면서도 놀라운 상상력을 자랑하는 거장으로 델 토로가 매번 머릿 속 상상을 놀랍도록 강렬한 현실 속 비주얼로 구현해 내 스크린 위로 옮기는 솜씨는, 다름 아닌 그의 집, 그의 컬렉션에서부터 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일 LA카운티박물관(LACMA)에서 시작된 ‘기예르모 델 토로: 괴물들과 사는 집(Guillermo del Toro: At Home with Monsters)’는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 영화팬들을 흥분시키는 전시다. 델 토로의 경이로운 수집품들이 사상 최초로 ‘전시’ 형태로 대중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전시공간을 채우고 있는 전시품은 약 600여점. 델 토로의 컬렉션 중 하이라이트만 모아 놓은 것은 물론, 델 토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의상이나 소품, 실제 사용했던 모형, 온갖 아이디어를 적어놓았던 노트북과 콘셉 아트 등을 총 망라하는 전시품들이다. 언제나 호러 장르와 괴물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델 토로의 미적 감각과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담아보고 보다 가까이 이해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오랜 노력과 준비 끝에 이번 전시를 실현시킨 LACMA의 브릿 살베센 큐레이터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엄청난 컬렉션을 옮겨 오는 것도 큰 도전이었지만, 그의 집 안 곳곳에 전시돼 있었던 느낌을 그대로 구현해내는 것이 큰 과제”였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전시장은 마치 델 토로의 집을 둘러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친밀하고 포근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전시품들을 한결 편안하고 재미나게 감상할 수 있는 이유다.
델 토로 감독은 전시장을 찾을 방문객들에게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안에서 길을 잃어 헤매며 살짝 겁에도 질려보길 바란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내가 그랬듯 호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내 머릿 속을 마음껏 들여다보고 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델 토로 감독의 상상 속에서, 그가 사랑하는 괴물들 안에서, 기분 좋게 길을 일을 차례다.
‘기예르모 델 토로: 괴물들과 사는 집’ 전시는 오는 11월 27일까지 LACMA 아트 오브 아메리카 빌딩 플라자 레벨에서 계속된다. 자세한 사항은 LACMA 웹사이트(www.lacma.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글 / 이경민 기자
‘겅민양의 돈내고 볼만해?’ 는 영화&엔터 전문 이경민 기자가 목숨걸고 추천하는 금주의 핫 공연 &이벤트와 화제 인물을 다룹니다. lee.rachel@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