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 권위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 후보로 각계의 청원이 이어지고 있는 고 김영옥 대령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고난을 극복하고 자유 수호의 정신을 실천했던 그의 삶의 가치를 되새겨봅니다.
“나는 100% 미국인이며 100% 한국인이다”
영웅을 기다렸던 시대의 영웅 김영옥 대령 (1919~2005)
대통령 자유메달 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미국의 안보와 국익에 기여하고, 세계 평화, 문화예술로 탁월한 공적을 쌓은 인물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
최근 고 김영옥 대령에게 ‘대통령 자유 메달’ 추서를 촉구하는 각계의 청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김영옥 대령의 지대한 공헌에 경의를 표하며, 역사에 굳건히 새길 가치있는 유산을 남긴 이 이름없는 영웅을 대통령이 기릴 것을 촉구한다.”
테레사 수녀, 대처 영국수상, 레이건 전 대통령, 호킹 박사, 메르켈 독일총리 등이 대통령 자유 메달의 역대 수상자 (미주한인위원회(CKA)에서 백악관에 서류 접수)
- 천재군인
- 전장의 전설
- 미국의 군사 교본을 다시 쓰게 한 인물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의 영웅으로 한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 3개국의 최고무공훈장을 받은 김영옥 대령을 일컫는 수식어들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목숨을 건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나는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1919년 LA에서 출생한 그는 소수계로서 수많은 차별과 싸워야 했습니다.
유색인 징병 대상 제외
부대 내 보직 제한
그러나 그는 유색인종 최초의 대대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우리를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해 줄 것을 믿었다. 우리는 다른 민족과 동등하며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합니다”
전역후 한국전이 발발하자 즉시 자원 입대했지만 한국계는 통역관만 가능했기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보병으로 최전방에서 싸우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휴전선의 원형이 된 중부 전선 60km 북상의 주역
수많은 ‘최초’ 의 역사를 개척한 삶
- 2차대전 참전 한국계 최초 미군 장교
- 미 육군 최초 아시아계 대대장
- 최다 훈장(19개) 받은 아시아계 미군
- 3개국 최고 무공훈장
- 한국군 최초 미사일부대 창설
- 미국 최초 한국인 명명 학교 – 김영옥 중학교(LA한인타운)
- 미국 최초 한국인 명명 대학 연구소 –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UC리버사이드)
예편 후 40여차례의 대수술을 반복하면서도
정,재계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에 33년을 헌신했습니다
- 한인건강정보센터(KHEIR)
- 한인청소년회관(KYCC) 창립 멤버,
- 한미연합회(KAC), 한미박물관(KAM) 설립자 겸 이사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내가 속한 사회를 보다 낫게 만드는데 평생을 바칠 것이다”
소수계로 유일하게 2011년 MSN 선정미국 전쟁영웅 16인에 포함
조지 워싱턴, 그랜트, 아이젠하워, 맥아더, 패튼, 슈워츠코프 등과 함께
“나는 미국과 한국 양쪽 모두를 위해 싸웠다”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자유 수호를 위한 두차례의 전쟁에 헌신하고 약자를 위해 살았던 김영옥 대령이야말로 ‘자유의 메달’의 가치를 평생 실천한 인물입니다.
타계 10주년인 2016년, 김영옥 대령이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상한다면 한인 최초의 수상자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됩니다.(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후보 추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내 이야기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故 김영옥 대령, 1919. 1~2005. 12
구성 / 최주미
그래픽 송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