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다운타운은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한인타운 지척에 있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다. 유명 레스토랑과 맛집들도 많다는 데 아주 가끔 마음먹고 가도 어떤 메뉴를 먹어야 할지 몰라 불편하기만 하다.
그런 다운타운이 조금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호텔 레스토랑이 말이다. 호텔 ‘셰라턴 그랜드 LA’ 레스토랑 ‘디스트릭트(District)’다.
디스트릭트는 모던 아메리칸으로 분류되는 레스토랑이다.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는 다운타운만의 힙한 느낌을 그대로 연출하고 있다. 그런 레스토랑인데 메뉴판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중간 중간 섞여 있는 ‘불고기’ ‘김치’ ‘코리안 스타일’ ‘고추장’ 등의 단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LA타코’는 코리안 스타일로 양념한 비프와 김치를 사용했고 프렌치 요리인 ‘본매로(bone marrow)’는 불고기 양념을 하고 오이무침이 함께 서브된다. 이름도 ‘불고기 본매로’다. ‘디스트릭트’를 이끌고 있는 한인 1세 핸슨 이(한국명 이현석) 수석 셰프의 작품이다.
핸슨 이 셰프는 3년 반 전 셰라턴 그랜드가 오픈할 때 합류, 디스트릭트를 다운타운의 핫 플레이스로 만들었다. 그의 요리와 1세 한인으로 호텔 레스토랑 수석 셰프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국에 온 지 얼마나 됐나. 1.5세인가.
“아니다. 군대 제대하고 23세에 시카고에 왔다. 그러니 1세다.”
-한국에서부터 요리를 배웠었나. 요리를 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는 요리에 관심도, 배워본 적도 없다. 우연하게 W호텔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을 하게 됐다. 당시 로컬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호텔 셰프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저런 셰프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는 실란트로(고수)를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타코에도 베트남 쌀국수에도 실란트로를 넣어 먹더라. 정말 맛이 이상했는데 친구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왜 나만 그 맛을 못 느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기로 3일 내내 실란트로를 음식에 넣어 먹었다. 그렇게 3일째 되던 날 실란트로 맛에 눈을 떴다. 이렇게 맛있는거였구나 깨달으면서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식재료와 음식이 많다는 것을 알고 흥미를 갖게 됐다.”
-언제 수석셰프가 됐나.
“시카고 르 꼬르동 블루에서 공부했고 호텔 페닌슐라 시카고에서 처음 요리를 시작했다. 아내가 일자리를 옮기면서 페닌슐라 베벌리로 옮겨왔다. 페닌슐라 베벌리에 있을 때 단골로 오던 호텔 오너에게 스카우트되면서 처음 수석 셰프가 됐다. 그때 나이가 29세였다.
-빠르다. 남다른 노력을 했을 듯하다.
“페닌슐라 시카고에는 홍콩에서 온 선배 조리사들이 있었다. 칼 솜씨가 엄청났다. 그래서 목표를 하나 세웠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될지 아님 그만두게 될지 모르지만 칼질만큼은 이 호텔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보자. 그렇게 목표를 하나하나 이뤄가면서 성장한 것 같다. 또 한가지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요리를 시작하고 난 후 매달 2~3권의 새로운 요리책을 사서 읽는다. 요리책만 수백 권에 달한다. 도서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자리에 있게 해준 것은 ‘절박함’이었던 것 같다.”
-호텔이 셰프를 고용할 때 어떻게 뽑나. 셰프 면접은 어떤지 궁금하다.
“호텔 업계가 좁기 때문에 먼저 추천들을 받지만 테스트 면접을 봐야 한다. 셰라턴에 올 때는 애피타이저를 포함한 디시 코스를 5가지를 만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면접은 패서디나 랭흠 호텔 때다. 당시 앞서 면접을 본 유명 호텔 셰프 다섯 명이 줄줄이 떨어졌다. 그래서 기대도 안 했다. 근데 테스트가 끝난 후 면접관으로 있던 총괄 매니저가 ‘모든 코스가 완벽했다’고 평했다. 내 생애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반대로 직원을 뽑을 때 무엇을 보나.
“실력도 있어야 겠지만 태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력과 태도를 4:6 정도로 본다. 실력은 늘릴 수 있지만 태도는 본인 이외에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팀워크를 많이 본다. ‘내가 제일 잘한다가 아닌 내가 팀과 함께 일을 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주방에서는 원맨쇼가 필요 없다. 자기 혼자 잘한다고 레스토랑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두 다 같이 잘해야한다. ”
-주방이 웬만한 식당만하다. 많은 직원을 이끌려면 힘들지 않나.
“호텔은 레스토랑 음식만 하는 게 아니다. 연회가 있을 때는 1000명분의 음식을 만들어야 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실수를 하면 수만 달러의 손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리더십이 중요하다. 하지만 고든 램지 셰프 같은 카리스마보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토머스 켈러 셰프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디스트릭트는 어떤 식당인가.
“LA는 보일링 팟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찾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들이 골고루 발달하고 있다. 그리고 LA다운타운을 찾는 손님들을 새로운 요리를 맛보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유롭게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트렌디한 모던 아메리칸 식당이라고 보면 되겠다.”
-푸드 트렌드는.
“비건(vegan)과 베지터리언(vegetarian) 요리가 더 이슈가 되고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다. 10년 전 만에도 비건 음식이 거의 없었고 수요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채소를 주재료로 한 음식이 발달하게 될 것이다. 우리 메뉴 중에도 콜리플라워를 스테이크처럼 구워주는 메뉴가 인기다.”
-한식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한식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숙성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숙성 기술을 가진 나라들이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한국의 젓갈, 장, 김치 모두 숙성한 것이다. 우리가 항상 당연스럽게 접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숙성은 대단한 기술이다. 요리를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요리를 알아갈수록 한식의 큰 매력을 느낀다.”
-한식의 현주소는
“스시가 90년대 인기를 끌 때 스시를 먹는 사람은 굉장히 앞서가고 오픈되어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지금 한식이 그렇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전통 한식을 먹은 타인종 친구들이 한식을 먹고 자랑스럽게 인증샷을 찍어 올린다.”
-한식 세계화에 적합한 메뉴를 꼽자면.
“‘전’이다. 해물파전, 김치전, 야채전까지 전 요리가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타인종들에게 전은 팬케이크의 종류다. 시럽을 부어 달달하게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은 완전히 다른 컨셉을 제시한다. 스윗한 팬케이크가 아닌 세이보리한 팬케이크다. 색다른 요리가 될 수 있다.”
-현재 주방에서 한식재료를 쓰고 있나.
“고추장과 된장, 고춧가루와 간장 등 기본적인 한식 양념을 사용하고 있고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한인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메뉴는.
“한인 2세들은 많이들 찾는 편인데 문어와 칼라마리를 접목한 ‘옥토마리(Octomari)’와 ‘브로콜리니 브루스케타(Brocollini Bruschetta)’를 즐겨 찾고 ‘불고기 본매로(Bulgogi bone Marrow)’와 홍합국물이 담백한 ‘머슬(Mussels)’도 잘나가는 편이다. 1세라면 스테이크(Bone In Prime Beef Strip Lion)와 우드 위에서 바로 구워내 나무향이 그대로 배어있는 연어스테이크(Plank Scottish Salmon)를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 계획은. 오너 셰프가 되고 싶지는 않은가.
“꿈이다. 몇 년 안에 그 꿈을 이루려 한다. 너무 크지 않은 아담한 레스토랑에서 좋은 재료로 손님들을 만나고 싶다. 그렇다고 고급식당은 아니다. 호텔에 있다 보니 고급음식을 해왔지만 좋은 테크닉과 좋은 재료로 대중적으로 다가가고 싶다. 장소는 패서디나나 LA다운타운이 될 수도 있다. 한인타운도 아주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셰프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선배로 한마디 해주자면.
“한인들이 요리사에 관심이 높다. 도전하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좋은 요리 학교를 나와도 처음 필드에 나오면 작은 일부터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재료를 손질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콜드 스테이션에서 샐러드나 디저트를 만들고 그 다음 불을 다루는 요리를 할 수 있게 된다. 한 단계씩 올라가게 된다. 쉽지 않다. 하지만 절대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도전해 보고 싶지 않나.
“몇 차례 본적이 있다. 최근에는 고든 램지편을 봤다. 실력 있는 셰프들이 많은 것 같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셰라턴 그랜드 호텔 : 700 W 7th Street Plaza Level in The Bloc, Los Angeles, CA 90017
▶디스트릭트 레스토랑 http://www.sheratongrandlosangeles.com/district-on-the-bloc
취재 / 오수연 기자
사진 / 김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