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년에 걸친 파라오의 이집트는 BC332년 알렉산더 대왕의 침범으로 종말을 고하고, 그 후 2천 년 동안 이방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어 역사의 뒤로 사라졌다. 로마의 기독교가 들어와 이집트 신전들을 폐쇄하고 기독교의 흔적을 남기고, 7세기에 들어온 이슬람은 이집트를 정복하고 그들의 종교, 언어, 문화로 머슬림의 자취를 남기겼다. 상형문자도 역사에서 사라져 아무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18세기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했을 때, 수학자, 천문학자, 건축가, 화가, 인문학자, 토목기사 등 175명의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이집트를 조사, 그 결과를 이집트지(Description of l’Egypte)로 출간, 사라진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에 대한 열풍을 불어왔다. 알렉산드리아 동쪽 작은 항구에서 유명한 로제타석(Rosetta Stone)을 발견했는데, 이는 BC196년 사제들이 프톨레마이 5세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 문장이었다. 검은색 현무암의 세 언어로 기록되어 상단은 상형문자, 가운데는 이집트 민중문자, 하단에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 장프랑수아 샹폴리옹(1790-1832)과 토머스 영은 1822년에 로제타석의 상형문자를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해독할 수 있었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한자 같은 표의문자가 아니라 표음문자일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후 그는 아스완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신비에 쌓였던 많은 상형문자를 해독하여 이집트 고고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집트의 신전과 부조, 기념탑 등에 수많은 상형문자가 발견되는데, 파라오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 외에도 천체의 운행, 사자(死者)의 글, 인간의 삶 등 다양한 주제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파라오의 이름은 상형문자를 사용했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받침대에 올려진 기다란 타원형 네모 안에 파라오 이름을 상형문자로 기록했는데 이를 카르투슈(cartouche)라고 부른다.
이집트를 오래 통치한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카르나크 신전, 아부심벨 대신전을 비롯해 여러 곳에 그의 조각과 함께 카르투슈를 많이 새겨 놓았다. 그의 카르투슈는 큰 해가 위에 있고, 파라오가 왕좌에 앉아 권력 상징의 지팡이와 앙크(Ankh)라고 십자가에 고리가 달린 모양을 들고 있고, 그 밑에 달, 산, 강 같은 모양이 있다. 앙크는 생명의 숨, 나일의 열쇠를 뜻하는데, 나중에 콥틱 그리스도교인의 심볼이 되었다.
그러나 람세스 2세를 표기하는 상형문자 기호는 전부 표의 기호이고 모음이 없기에 어찌 읽는지 확실치 않다. 람세스 2세는 모세의 출애굽 시기의 파라오로 지적이 되고 있으나 이 또한 확실치 않다.
파피루스(Papyrus)는 나일강 늪지에서 자라는 미나릿과 식물로, 이집트인들이 종이로 만들어 사용했으나,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 없다. 파피루스는 북부 이집트를 상징하는 꽃이었으며, 많은 신전의 부조와 기둥에 파피루스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파피루스에서 종이를 만들려면 우선 약 40cm 정도로 자르고, 가늘게 결대로 쪼개어 판자 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려 평평하게 만든다. 그후 그 위에 직각 방향으로 한 겹을 더 포개어 이것을 물에 적셔 압력을 가하면, 식물에서 나오는 진이 녹아 달라붙어 하얀 파피루스가 된다. 바나나 줄기로 만든 가짜도 있는데, 진품은 햇빛에 비추면 가로세로 줄이 보여야 한다.
인샬라! (Inshallah! 신의 뜻대로)
글/사진 시내산 김정선 (세계인문기행가)
시내산 김정선 씨는 7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대학 교수로 10년, 90년대에 교육연구 회사를 세워 20년 이상 미정부 K-20 STEM 교육프로그램 연구 사업에 기여했다. 연구를 위해 미국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녔고, 은퇴 후에도 세계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문학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