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회 아카데미 어워드는 문라이트의 작품상 수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상을 아쉽게 놓친 영화들도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빛을 내고 있다. 라라랜드를 비롯해 작품상 후보에 오른 9개 모든 영화들의 작품성은 그 어느 해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의 리뷰를 통해서 2016년의 영화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영화 라라랜드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라라랜드의 진부함
라라랜드는 진부하다. 흔한 이야기구조다. 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사랑을 하다가 서로 이해하지 못해 헤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극적으로 만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한다.
게다가 라라랜드는 뮤지컬 영화다. 뮤지컬 영화는 필연적으로 관객들이 비슷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대사 부분과 노래 부분이 교차하는 방식이 뮤지컬 영화만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어쩔 수 없는 장르적 특성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도 많이 나온다. 표절이 아니고 고전에 대한 오마주다. 편안한 익숙함이라고 할 수도 있고 진부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동시에 받아냈고 데미언 차젤레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진부함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라라랜드를 특별한 영화로 만들었을까?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라라랜드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장면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첫 장면은 라라랜드의 이런 경향을 잘 대변해준다. 꽉 막힌 LA의 고속도로 위에 다양한 사람들이 춤을 추며 뮤지컬의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짜증나는 현실과 도피를 하고 싶은 환상이 동시에 보인다. 짧은 환상이 지나가면 교통체증이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피스 천문대의 장면 또한 로맨틱한 환상을 멋지게 표현해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흔히 이야기하는 ‘날아가는 기분’이 시각적으로 보일 때 쾌감이 느껴진다. 판타지에 가까운 연출은 라라랜드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영화의 마지막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세바스찬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 미아의 옆에는 남편이 있다. 둘의 인연은 끝났다. 하지만 그 순간 환상이 끼어든다. 첫만남부터 너무나도 완벽한 연애를 했다면 어떨까 하는 가정과 함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짧은 환상이 지나가면 둘은 맺어지지 못했다는 현실로 돌아온다. 환상적인 장면들은 모두 멋지지만 결국에는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이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다.
꿈이냐 사랑이냐
판타지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라라랜드는 지독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생활에서 겪는 고민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사랑이 우선인가 꿈을 위해 하는 일이 우선인가? 세바스찬은 미아를 위해서 일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둘의 관계는 위기에 빠진다. 미아는 현실의 장벽에 막혀서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가 겨우 마지막 기회를 잡게 된다. 중간 중간 환상이라는 ‘단 맛’을 집어넣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실이라는 ‘쓴 맛’이 강조된다.
보는 내내 관객은 미아와 세바스찬이 현실적인 조건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맺어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지독히 현실적인 이야기기 때문에 결국 둘의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후로 둘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행복한 마지막은 없다. 둘은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랑을 놓쳤다.
미아는 원하던 배우가 됐다. 세바스찬은 원하던 클럽의 사장이 됐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면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아련하게 이야기하던 감정을 놓쳤다. 영화는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꿈을 선택하고 사랑을 포기했다. 이것이 라라랜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다. 꿈과 사랑을 동시에 이룰 수는 없다.
할리우드는 꿈의 도시다. 많은 사람이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꿈꾸며 할리우드에 온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들이 스며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깨어진 꿈의 도시로도 불린다. 환상과 현실이 공존한다. 사랑과 꿈도 함께 있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할리우드를 가장 잘 보여준 영화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라라랜드를 처음 볼 땐 환상이라는 달콤한 코팅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안에는 쓰디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할리우드처럼.
디지털부 조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