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이 돌아왔다. 나이가 좀 들었고, 몸도 좀 불었다. 미리 말해두자면, 조금은 전만 못할수도 있단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와 준 게 어딘가.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3부작 이후 맷 데이먼이 하차하고 나선, 다신 못 만날 줄 알았던 제이슨 본이다. 본 시리즈 팬들에게 깊은 분노와 실망만 안겼던 제레미 레너 주연의 스핀 오프 ‘본 레거시‘의 흑역사를 우린 똑똑하게 기억한다. 그러니 돌아온 맷 데이먼과 2,3편을 연출했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컴백‘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밖에. ‘007’ 시리즈를 넘어, 할리우드 영화 사상 최고의 첩보물로 꼽히는 ‘제이슨 본‘의 귀환에 열광하는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이슨 본‘은 그럭저럭 즐길만한 액션 스릴러다. 평범한 첩보물로 생각한다면야 스토리와 스케일 양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기존의 ‘본‘ 시리즈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생각한다면 적잖이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주인공 제이슨 본이 30대 초반의 날쌔고 파릇파릇했던 모습에서 40대 중반의 다소 후덕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세월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안하고 봐 줄 수 있는 변화이기도 하다.
스토리는? 70점
전 편 이후 자취를 감췄던 제이슨 본에게 전 동료 니키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스)가 찾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키는 해킹을 통해 제이슨 본을 살인병기로 만들었던 또 다른 배후 세력을 알게 되고, 거기에 본의 개인사까지 얽혀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CIA의 새로운 국장 듀이(토미 리 존스)와 사이버 보안 담당 헤더(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발 빠르게 두 사람을 쫒고, 본에게 원한이 있는 킬러(뱅상 카셀)까지 합세하며 또다시 목숨을 건 무시무시한 추격전이 이어진다. 거기에 전세계인을 감시 통제하려는 듀이의 검은 속내까지 더해지며,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기억의 조각을 맞춰 가려는 본의 정체성 찾기 노력은 이번에도 이어지지만, 굳이 옛날 일을 들춰 평이한 복수극처럼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은 다소 실망스럽다. 대신 본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는 킬러를 등장시켜 전에 없던 팽팽한 대결 구도를 만든 건 영리했다. 조직 내부의 비리를 파헤치고 처단하는 전작들에 비해, 소셜미디어를 통한 감시와 통제로 우리의 일상까지 침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설정도 흥미롭다.
액션은? 80점
시리즈의 인증과도 같은, 전 세계를 돌며 벌이던 화려한 액션은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규모를 키웠다. 그리스, 아이슬란드, 영국, 미국 등지를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소요 사태가 한창인 아테네의 군중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토바이 추격신과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한복판에서 차 200여 대를 산산조각내며 찍은 자동차 액션이 대표적이다. 반면,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던 빠른 리듬의 맨몸 액션은 그 분량이 현저히 줄었다. 볼펜 한 자루라도 상대방을 순식간에 제압하던 제이슨 본이건만, 이번엔 극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킬러와 짧은 몸싸움을 벌일 뿐이다. 사방에 산적한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귀신같이 몸을 숨기며 위험에서 빠져나오던 실력도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조연들은? 90점
듀이, 헤더, 킬러까지 조연 3인방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인다. 처음부터 또렷이 악의를 드러내는 듀이의 비열함 섞인 굳은 표정, 속내를 알 수 없는 헤더의 차가운 얼굴이 내내 긴장감을 더한다. 토미 리 존스의 무뚝뚝하면서도 무게감있는 연기가 섬뜩하고,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첩보 액션물에서도 충분히 잘 녹아들 수 있는 전천후 여배우임을 보기 좋게 증명한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제이슨 본의 가장 강력한 적수로 꼽힐만한 뱅상 카셀의 힘있는 연기도 단연 볼 만하다.
글 / 이경민 기자
‘겅민양의 돈내고 볼만해?’ 는 영화&엔터 전문 이경민 기자가 목숨걸고 추천하는 금주의 핫 공연 &이벤트와 화제 인물을 다룹니다. lee.rachel@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