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일본의 공습으로 순직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진주만 역사 유적지의 미주리 전함 기념관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하와이 포드 섬 해군기지 안에 있는 이 기념관은 카메라만 휴대할 수 있다.
미주리 전함 앞에서 한 아가씨가 전혀 모르는 수병과 열렬한 키스를 한다. 승리의 기쁨을 표현한 이 조형물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남편과 아들, 그리고 연인과 나누는 행복한 입맞춤이다.
1944년 취역한 길이 270m, 폭 33m, 높이 64m의 미주리 전함은, 고리 하나가 50kg인 365m의 줄에 15톤의 닻에 묶여 있다. 포탄의 무게가 1톤인 9문의 50구경 주포, 사정거리 3,700km인 32기의 토마호크 미사일, 사정거리 120km인 함대함 하푼 미사일과 3대의 정찰기가 탑재되어 있다.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에서 한 가미가제 자살특공기가 미주리호에 격돌한다. 일본 조종사 시체가 발견되자, Callaghan 선장은 미군 병사들과 같은 절차로 바다에 수장하도록 명령한다. 미군을 살상하려고 돌격했던 적군이었지만 예의를 다하여 장례를 치른다. 이는 세계 질서를 감당해 나아갈 미국인들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일본인들과 지구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미주리 전함은 1950년 12월 15일 흥남 철수작전에서 16” 함포 사격으로 중공군의 추격을 저지시켰다. 미 10군단과 국군 1군단 장병 10만 명, 피난민 10만 명의 철수를 위하여 동원된 선박 200척을 호위하였다. 10일간의 철수 마지막 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 화물선에는 군수물자가 가득 채워졌다. 군단장 알몬드 소장의 민사고문 의사 현봉학 박사의 간곡한 부탁에, 선장은 무기를 내려놓고 피난민 14,000명을 태운다.
메러디스 호는 28시간의 항해 끝에 부산 앞바다를 지나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한다. 엄동설한에 단 1명의 사망자도 없이 오히려 5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2004년 기네스북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의 배’로 기록된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메러디스 호의 선장 La Rue는 항해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다. 뉴저지 뉴턴의 St. Paul’s Abbey에서 ‘마리너스’라는 영세명으로 사역하다, 87세에 하나님 곁으로 갔다. 일등 항해사 Lunney는 코넬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6년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재향군인회에서 ‘향군대휘장’을 받았다. 러니는 “진정한 영웅은 죽음의 극한 공포 속에서 굳건한 용기와 신념을 보여준 피난민이었다”고 술회하였다.
1910년 중국과 러시아를 격파한 일본은 한국과 대만을 합병하고 만주를 점령한다. 빠르게 현대화 되고 있는 자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석유, 주석, 철, 고무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시아를 장악한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 연합인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자, 미국은 일본으로 향하는 오일 금수 조치를 취한다.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3,500여 명의 사상자와 21척의 군함과 300여 대의 항공기를 파괴한다.
진주만을 기습한 다음 날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공격하고 타이랜드와 괌을 수중에 넣는다. 1942년 필리핀, 버마, 싱가포르, 뉴기니를 굴복시킨 다음, 과달카날과 베링해의 미국영토 알류샨 열도를 차지한다. 1943년 많은 지역에서 전투를 벌인 일본은, 병사와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한국 농촌의 놋그릇과 요강까지 강탈하고 학생들을 강제 징집한다. 날로 떨어지는 군 사기를 위하여 어린 소녀들을 위안부로 차출해 가는 만행을 저지른다.
훈련된 조종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에 비해, 미국은 진주만 공습 당일 그곳에 없어 화를 면한 미 태평양 함대 항공모함 3척에서, 애국심에 불탄 조종사들이 우수한 성능의 전투기에 오른다. 6개월 만에 복구된 진주만 전함들은 가공할 위력으로 일본군을 격파한다. 과달카날, 솔로몬 제도, 알류샨 열도, 뉴기니를 되찾고 마셜과 길버트로 진격한다. 1944년에 사이판과 필리핀을 되찾는다.
전함 미주리는 1955년 퇴역하여 30년간 쉬었다가, 1986년 장비를 현대화하고 재취항하였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에서 32기의 함대지 토마호크 미사일과 함포 사격으로 이라크군을 제압하였다. 1995년 퇴역한 미주리호는 1998년부터 이곳에서 역사의 교훈을 보여준다. 일본의 기습으로 침몰한 애리조나호로부터 시작된 전쟁은, 1945년 9월 2일 동경만 미주리호에서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종결된다. 일본 대표 시게미쯔 외상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에 의해 한쪽 다리를 잃은 자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참석하였다.
태평양 전쟁의 시작과 끝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진주만 역사유적지는 USS Arizona Memorial(Free), USS Bowfin Submarine Museum and Park($25), Pacific Aviation Museum($25)과 Missouri Battleship Memorial($29) 등으로 기념관마다 별도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글, 사진 / 박명애 (세계여행 전문가)
박명애 씨는 마일리지와 포인트로 항공권과 호텔을 해결하며, 기적처럼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몸소 체험하며 얻은 정보와 사연들을 책과 블로그를 통해 공유한다. 저서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수상한 세계여행’ 1, 2가 있다. 그의 알뜰한 세계여행은 지금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