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영웅설화들이 그렇듯이 영화는 ‘그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로 시작한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아틀란티스 왕국의 여왕 아틀란타가 육지에서 기절한 것을 발견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평범한 등대지기인 아버지는 여왕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아들을 낳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아들 ‘아서’는 해양생물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엄청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고 자라서 ‘아쿠아맨’이 된다.
아틀란티스인과 인간의 혼혈인데다 사생아인 그가 난생 처음 아틀란티스에 되돌아가게 되는 이유는 왕국 내 정치상황이다. 이복동생이 왕의 자리에 오르고 아틀란티스의 다른 왕국들을 통합시켜 ‘오션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 뒤 육지와의 전쟁을 벌이려고 한다. 아틀란티스인 중 전쟁을 반대하는 세력은 아쿠아맨이 이복동생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것이 전쟁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원하지 않게 왕위쟁탈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왕이라면 갖춰야 할 삼지창을 찾기 위해 사하라 사막과 이탈리아는 물론 지구 중심까지 돌아다니며 모험을 하던 아쿠아맨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모험을 함께 했던 아틀란티스의 공주 메라와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전형성을 피하기 힘들다. 영웅의 서사라는 것은 언제나 비슷하게 마련이다.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슈퍼히어로 영화가 극장가를 지배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쿠아맨이 소속된 슈퍼히어로 만화 전문회사 DC는 배트맨과 슈퍼맨, 원더우먼과 같은 인지도가 높은 슈퍼히어로를 모두 보유하고 있지만 전형성을 피하지 못해서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는 번번이 실패해 왔다.
반면 라이벌이었던 회사 마블은 처음부터 영화계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DC와의 격차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마블은 다양한 장르의 문법을 슈퍼히어로 영화에 접목시키면서 전형성을 피해왔다. 스릴러적인 진행이 돋보인 캡틴 아메리카나 절도를 주소재로 하는 하이스트 무비의 형태를 한 앤트맨이 대표적 예다. 물론 때로는 압도적인 비주얼과 독특한 문화적 요소를 통해서 새로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블랙 팬더는 아프리카의 문화적 요소와 발전한 과학기술을 뒤섞은 이른바 ‘아프리칸 퓨처리즘’을 도입해서 ‘쿨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아쿠아맨이 DC의 여러 실패작 중 그나마 나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형성을 피하고자 하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쿠아맨의 이야기 구조는 몇백 번이고 반복돼 온 것이다. 출생의 비밀과 형제끼리의 싸움은 드라마에서도 자주 쓰이는 소재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 위에 압도적인 비주얼을 끼얹어서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를 완성해냈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틀란티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속에 있는 문명인 아틀란티스는 그리스 시대의 우아함을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발전한 과학기술이 있다. 심해의 문명을 표현하는 방식은 황홀하다. 흠잡을 곳이 없다.
또 하나 영화를 빛나게 해주는 것은 배우들의 캐릭터다. 완벽한 근육질 몸매와 야생적인 이미지를 가진 제이슨 모모아는 괴팍한 유머 감각을 통해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동안 제대로 된 역할을 받지 못해서 연기력 논란에 시달려 왔던 앰버 허드는 메라라는 캐릭터를 만나서 자신의 매력을 완벽하게 발산한다. 메라의 존재감은 영화를 생동감 있게 해준다. 영화의 시작에 아쿠아맨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부터 조금씩 나오던 로맨틱 코미디 적인 분위기는 메라의 연기를 통해서 완전히 극과 동화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블랙 팬서와 아주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 출생의 비밀과 형제의 싸움이라는 고전적 서사 위에 전에 보지 못한 비주얼을 통해서 새로움을 더한다. 전형적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니 걸작은 아니어도 준수한 작품이 나오게 됐다. 영화는 슈퍼히어로라는 매력적 소재를 가지고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