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101번 프리웨이를 타고 중가주로 가는 길은 태평양 해안을 따라가다 내륙으로 들어간다. 해안은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내륙의 풍요한 들판은 목가적이다. LA에서 360마일 북상하면 태평양 연안의 몬터레이와 실리콘 밸리가 인접한 곳에 캘리포니아 농업의 중심도시 살리나스 시가 나온다.

‘세계의 샐러드 그릇’이란 별명을 가진 살리나스는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신선한 채소를 생산한다. 캘리포니아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디즈니랜드, 할리우드, 실리콘 밸리 등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세계 농업의 중심지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농업생산액은 미국에서 제일 큰 텍사스주의 2배가 넘는다. 채소, 견과류, 쌀을 많이 생산한다. 특히 아몬드, 호두, 키위, 건포도, 자두 등은 미국 생산량의 99% 이상을 차지한다.


스타인벡 박물관은 20세기 미국 문학을 이끈 존 스타인벡의 자료집을 비롯해 작품 및 철학에 관한 다양한 전시물을 보유하고 있다. 스타인벡 센터 기념회는 1983년에 설립되었지만 센터 자체는 1998년 6월 27일에 완성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풍부한 일조량과 잘 갖춰진 관개시설,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250여 종의 작물이 생산된다. 사막기후와 부족한 수자원 등 불리한 자연조건에서도 농업을 성장시킨 것은 이민자들의 노력과 기술축적 덕분이다.

1880년대 후반 오클라호마 등 중부 지역의 대평원이 랜드 런 방식으로 백인 이주민에게 불하됐다. 대평원에 정착한 백인 이주민들은 1930년대 대공항과 가뭄, 모래폭풍 전까지 목축과 농작물을 재배했다.

세계의 곡창 대평원이 ‘죽음의 땅’으로 변한 이유는 인간의 탐욕과 가뭄. 영농기계화에 있었다. 농장주들은 트랙터로 토양 침식을 막아주며 지하수를 가두는 역할을 하던 야생 풀을 뿌리째 갈아엎었다. 농업기계화가 소출을 늘렸지만 땅은 곧 지력을 잃고 황폐해졌다.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 때 농토를 잃은 가족의 삶을 그린 내용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주연으로 영화화됐다.

모래폭풍은 인재였다. 1936년 11월 상공으로 올라간 흙과 모래가 미국 동부 지역으로 이동해 대서양과 인접한 지역에는 붉은 눈이 내리기도 했다. 농부들은 몇 년간 이어진 모래폭풍과 가뭄으로 땅과 가축 등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지독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가재도구만 챙겨 서부로 떠났다.

모래폭풍과 공황으로 대략 250만 명이 중에서 서부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주로 떠났다. 1848년에서 1865년까지 캘리포니아주 골드 러시 때 캘리포니아에 유입된 인구보다 1930년대 모래폭풍으로 더 많은 인구가 서부로 이주했다.

살리나스는 대공황 시대 미국의 참혹한 농촌의 현실을 그려낸 ‘분노의 포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문학의 대표적 작가 존 스타인벡의 고향이기도 하다. ‘분노의 포도’는 오클라호마주의 모래폭풍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캘리포니아로 살길을 찾아 떠나는 조드 일가의 이야기다. 고된 농사일에 시달리는 이주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전시장에서 한국에서 출판된 ‘에덴의 동쪽’ 등 전세계에서 출판된 스타인벡의 소설들이 전시되어 있다.

‘분노의 포도’가 출간되고 열악한 농촌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작품에 나타난 소작인, 지주, 이동 노동자, 자본가, 행정당국의 행태는 큰 논란이 됐다. 특히 작품의 무대가 된 오클라호마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비난의 여론이 들끓었다.

‘분노의 포도’는 초판이 50만 부나 팔려나갔다. 사회성이 강한 작품의 발표로 의회에서 캘리포니아 이주농민들의 실상에 대한 질의가 나오게 됐다.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로 193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1962년에는 ‘에덴의 동쪽’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에서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로지 인간 개인의 선택이자 의지에 달려있다는 뜻의 히브리어 ‘팀셀’을 말한다. 스타인벡은 소설을 통해 줄곧 현대인의 욕망과 집착 질투를 경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농업 중심지 살리나스 다운타운에는 스타인벡의 생가와 스타인벡 박물관이 있어 그의 인생을 돌아보고 작품 속에 그려진 캘리포니아 이주농민의 역사와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풍요한 캘리포니아는 1930년대 모래 폭풍으로 전 재산을 잃고 이주해온 오키즈 농부들의 억척스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