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잉카 문명의 흔적을 찾아 마추픽추(Machu Picchu)에 올랐다. 15세기 중엽 잉카 제국 파차쿠티 왕 때 7,970 ft 산 꼭대기에 건립된 성채 도시이다. ‘잉카’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 황제는 태양의 아들로 숭앙되었고, 마추픽추에도 태양의 신전을 쌓았다.
16세기 잉카인들은 홀연히 사라졌는데, 질병과 천연두에 의한 종족 말살, 식량 부족 등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여기서 발견되는 유골의 80%가 여자와 아이들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어쩌면 잉카의 남자들은 외부와의 항쟁을 위해 마추픽추를 떠나게 되면서 여자와 아이들을 남기고 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산자락에서는 마추픽추 성채가 보이지 않아서 잃어버린 잉카의 공중도시라고도 부른다. 1911년 페루 독립에 대해 연구하러 왔던 예일대 고고학 교수 하이럼 빙햄에 의해 재발견되기 까지는 마추픽추는 400년 이상 산꼭대기에 숨어 폐허가 되어 세상에서 잊혔다.
마추픽추는 당시의 잉카 문명을 보여 주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지역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종교, 정치, 건축기술, 생활상을 한눈에 보여 주는 페루의 귀한 고고학적 유적이자 성스러운 지역이고 잉카인의 비애가 배어 있는 역사적 유물이다.
마추픽추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태양신전(Intiwatana Temple of Sun)을 비롯하여 콘도르신전, 왕녀의 궁전, 주거지역, 천문관측지역, 감옥, 예식을 드리는 곳, 주 광장 등으로 도시 계획이 잘 되어 있다.
특별히 건물 및 성곽에 쌓아 올린 돌들을 보면 그 이음새에 종이 한 장도 안 들어가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볼 수 있다. 정교하고 균일하게 자르기도 하고, 거대한 자연석 모습 그대로 귀퉁이들을 맞추어 모르타르 없이 이어 돌벽을 축조했다. 때로는 바위 이음새 사이에 요철 모양을 만들어 끼어 맞추는 기술도 보이고 있다. 돌벽에 만든 창문은 대개 마름모꼴을 하고 있다. 이집트인들처럼 바위 틈새에 나무를 박고 물로 불려서 돌을 잘라낸 증거가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계단식 농경 지역 테라스로 둘러싸여 있고, 각 건축물 사이로 수많은 우물과 수로, 거대한 돌로 만든 계단들이 이어진다. 160개 정도의 주거지가 있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곡물(옥수수, 퀴노아) 생산량으로 보아 2천 내지 만 명 정도의 인구로 추측하고 있다.
유적 꼭대기에 ‘인티파타나‘라는 석조물 제단이 있는데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매년 동지 때 태양을 붙잡아 매기 위해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해시계의 역할도 하고 산봉우리의 기가 모이는 곳으로 신성시해서 만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두 시간 이상 계단과 좁은 길을 따라 성채 전체를 한 바퀴 돌았는데, 마추픽추(오래된 봉우리라는 뜻) 뒤에 우뚝 서 있는 와이나픽추를 위시해서 주위의 모든 산이 잃어버린 잉카문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안데스 지역에 있었던 잉카족은 13세기 초반에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현재의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지역을 포함하는 거대한 잉카제국을 건설했다. 잉카에는 문자와 화폐도 없고, 철기 시대가 없고, 수레바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남북으로 달리는 왕도와 함께 찬란한 문명과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순박한 잉카인들의 평화를 앗아 갔다. 1531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사절로 왔다고 속이고 아타왈파 황제를 방문한다. 황제가 도미니크 수도회 신부의 성경을 거부하자, 168명의 총으로 무장한 스페인 기마부대는 수천 명의 비무장 인디오 원주민을 무차별로 학살하고 황제를 사로잡았다. 황제는 피사로에게 황금을 주면서 살려주기를 요청했으나 2년 후 결국 사형당하고 만다. 피사로의 군대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로 진격해서 잉카제국을 점령, 잉카 제국은 300여 년 만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16세기 중엽부터 스페인 식민지가 되면서 많은 잉카의 흔적이 사라져 갔다.
역사에 남아 있는 식민주의 국가들의 욕심과 ‘총, 균, 쇠(Guns, Germs, & Steel) 횡포에 의한 많은 원주민 말살 기록은 예를 들기에도 너무 처참하다. 조선시대에 일본의 조총에 의해 유린당한 우리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또한 우리는 식민주의 시대에 많은 유럽의 선진국들이 세계 곳곳에서 같은 만행을 저질렀음을 기억한다.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쿠스코(Cusco)로 간다. 이곳은 고도 10,900ft로 고산증의 첫 증세를 느낄 수 있는데, 일단 적응한 후에 3천 피트 정도 낮은 마추픽추로 향하게 된다. 잉카인들이 세계의 중심(배꼽)으로 생각한 쿠스코는 잉카와 스페인 문명을 함께 보여주는 작은 고대 도시이다. 쿠스코 무기 광장에는 잉카제국의 유명한 파차쿠티 왕의 동상이 스페인들이 세운 성당에 둘러싸여 있다. 쿠스코성당과 맞은편 산토도밍고성당 부근에 10개의 성당이 있다.
쿠스코에서 울란따이땀보(Ollantaytambo) 기차역으로 가서, 마추픽추행 기차 Inca Rail을 타고 산 밑에 있는 도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로 한 시간 정도 간다. 열차표 구입에는 여권이 필요하고, 하루 방문객을 2,500명으로 제한 통제하기 때문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
협궤 기차이지만 깨끗한 현대식 기차로 잉카티(Te Inca)와 잉카 옥수수 등 간식이 포함되어 있다. 기차는 우르밤바강을 따라가는데, 만년설도 멀리 보이고 구름을 따라 올라가는 기분이다.
일단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하면, 또다시 긴 줄에 서서 기다려 소형버스를 타고 한 시간 구불구불 좁고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 드디어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한다. 멀고 먼 길, 마추픽추 입구까지 가는데만 비행기 표 2장, 버스표 2장, 기차표 하나가 필요했지만 그만큼 보고 느끼는 게 많은 순례의 길이었다. 잉카의 문명과 패망, 저항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묵묵히 보여 주는 유적이 바로 안데스산맥 밀림 속의 마추픽추이기에 찬란했던 문명에 경탄하며 기억을 더듬다가도, 마음 한쪽 구석이 아련해 온다.
글/사진 시내산 김정선 (세계인문기행가)
시내산 김정선 씨는 7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대학 교수로 10년, 90년대에 교육연구 회사를 세워 20년 이상 미정부 K-20 STEM 교육프로그램 연구 사업에 기여했다. 연구를 위해 미국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녔고, 은퇴 후에도 세계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문학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