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Bob Marley)의 경쾌한 비트 ‘One Love’가 울려 퍼진다. 그는 이 노래로 1978년 평화 콘서트에서 자메이카의 두 정당 간의 내전으로 가는 상황을 화해로 이끌었다.
17세에 노래 시작, Bob Marley & The Wailers 3인조 그룹 활동, 1984년 음반 Legend를 비롯, 세계적으로 3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 레게(Reggae) 음악의 전설을 남긴 자메이카 출신 가수, 작곡가이다.
오초리오(Ocho Rio)의 태양빛 내리쬐는 코발트 색깔의 바닷가, 치렁치렁 땋아 내린 아프리칸 곱슬머리, 콧수염, 원색의 칼라 배경에 웃는 그의 얼굴 모습이 길거리마다 보인다. 제3세계의 가수로 international superstar로 올라섰고, 36세 암으로 단명(1945-1981)했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 되었지만 그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6천5백만 명에 이른다.
그의 음악에는 그가 믿는 라스타파리안(Rastafarianism) 신앙과 이와 연관된 제3세계의 사회 정의, 인권, 평화, 사랑과 화합 등의 메시지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1960년대 일부 팝 뮤직 가수들이 기성세대의 부조리와 권위에 대항하는 노래를 할 때, 밥 말리는 ‘Zimbabwe’, ‘Africa Unite’, ‘Wake Up and Live’ 등으로 저항운동, 1978년에 자메이카에서 One Love Peace Concert, 1979년 보스턴, 밀란 공연도 남아프리카의 Apartheid 반대, 아프리카의 단결과 독립을 외치던 공연을 이끌었다.
밥 말리는 영국계 해군 백인 아버지를 둔 혼혈아, 외로운 소년, 자메이카는 그가 틴에이져일 때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약소국가의 애환을 가지고 그의 신앙과 연결된 아프리카의 독립을 도왔다. 70년대 영국에서 빛을 본 후에 80년대 후에야 미국에 소개된 밥 말리는 39세에 요절한 큐바의 체 게바라와 비슷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밥 말리는 거의 동시대의 체 게바라 1928-1967를 존경했다. 30대에 횡사한 두 사람의 모습이 나란히 보이는 포스터가 많다.
그의 노래는 단순한 사랑 타령이 아니었고, 약소국가의 대영제국에 대한 항쟁이었다. 그의 노래의 사랑의 대상은 바로 자메이카를 상징한다. 짧은 생애지만 죽은 후에 더 많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1978: Awarded the Peace Medal of the Third World from the United Nations
1981: 자메이카 메리트 훈장 Jamaican Order of Merit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Rock and Roll Hall of Fame
1999: Album of the Century for Exodus by Time Magazine
2001: A Star on the Hollywood Walk of Fame.
2001: Awarded Grammy Lifetime Achievement Award
“One Love” named song of the millennium by BBC.
자메이카는 1962년 8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Kingston이 수도, Ocho Rio 부근에 손을 붙잡고 올라갈 수 있는 Dunn’s River Falls가 유명하다.
Montego Bay 의 해변도 아름답다.
“One love, One heart, Let’s get together and feel all right.”
글/사진 시내산 김정선 (세계인문기행가)
시내산 김정선 씨는 7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대학 교수로 10년, 90년대에 교육연구 회사를 세워 20년 이상 미정부 K-20 STEM 교육프로그램 연구 사업에 기여했다. 연구를 위해 미국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녔고, 은퇴 후에도 세계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문학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