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미술관 The Daily Museum
1 Dali Blvd, St. Petersburg, FL 33701
그림하면 초등학교 2학년 봄 사생대회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 손에 이끌려 연꽃이 피어있는 경복궁 경회루 앞에 둘러 앉아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김밥에 사이다를 먹는 호사도 누렸다. 하루를 즐겁게 지냈지만 입선은커녕 낙선을 하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기대를 저버린 것 같아 미안했고 솜씨 없는 나를 자책했다.
이후로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림에 문외한이다. 그래도 그림과 사진 같은 예술품을 보는 것은 좋아했다.
어느 날 기괴한 사진을 봤다. 화실에서 점프를 하는 달리, 공중에 같이 떠있는 고양이 달리의 머리를 향해 끼얹어진 물, 떠있는 의자가 있다. 사진 오른쪽에는 그의 아내 갈라의 초상이 그려진 달리의 대표작 ‘원자의 레다’ 그림이 놓여져 있었다. 초현실주의 작가를 표현한 초현실적 사진이었다. 1948년에 발표된 필립 할스만의 사진작품 ‘원자력 달리’다. 사진이 살바도르 달리에 대한 호기심과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달리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물이 초현실적인 것으로 변한다. 녹아내린 시계, 식물의 형상을 한 사람의 모습, 고무처럼 늘어나는 피아노가 그렇다. 작품 안에서 베이컨은 얼굴이 되고 달걀은 사람이 된다. 그림 속 여인의 몸에 서랍이 달려 있기도 하고 기린은 불타고 있으며 사람의 형상을 한 음식물이 서로 먹기도 한다. 육중한 코끼리가 새처럼 가늘고 긴 다리를 하고 걸어다니는 일도 있다.
달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실제의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상상의 산물을 실재하는 것처럼 상세하게 묘사한다.
달리는 꿈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사물을 새로운 구도를 통해서 보여주거나 이질적인 낯선 사물과 결합시킨다. 이중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며, 환상적인 존재를 이미지로 구현한다. 달리의 작품들은 그대로 독해가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림 속에 나타나는 달리의 불안한 정신세계는 혼란스럽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정신을 명확한 언어로 분석함으로써 어두운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무의식의 세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혁명적인 역할을 했듯이 달리의 작품들은 자신의 꿈 속으로 들어가 정신을 탐구하게 한다.
지난겨울 추위를 피해 플로리다 템파에 머물렀다. 템파는 겨울에도 여름 같은 들뜨고 소비적인 도시다. 미국이나 캐나다 동북부에 사는 은퇴자들이 철새처럼 내려와 겨울을 나는 곳이다.
템파 외곽 멕시코만을 바라보는 세인트 피터스버그 시에 달리 미술관이 있다. 스페인 달리 미술관 다음으로 많은 달리 미술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1942년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살바도르 달리 회고전을 보고 감명받은 모스 부부가 40여 년에 걸쳐 작품을 수집했다.
모스 부부는 소장품이 200여 점이 넘어가자 1971년 오하이오주의 비치우드에 달리 미술관을 열었다. 달리가 모스 부부를 위해 직접 미술관 개관식 사회를 봤다. 방문객이 점점 늘어나자 1982년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터스버그로 미술관을 옮겼고 2011년 미술관을 증축해 재개관했다.
달리의 기이한 그림에 상상을 보태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그의 그림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