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지병으로 불편하신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마지막으로 뵌 게 10년은 된 것 같다. 어머니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차분하고 담담했다. 깊은 그리움은 가슴에 묻고 일상적인 단어만 나열했다. 1주일 후에 찾아뵙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어머니를 돌봐 주시던 친척에게 부음을 듣고 곧장 한국으로 향했다. 화장장에서 나온 하얀 보자기에 싸인 어머니의 유골함을 가슴에 안았다. 유골함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장지로 가는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생전 어머니 모습이 흐려진 시야에 영화장면처럼 흘렀다.

빅토리아 시대의 거실을 본뜬 상갓집의 모습.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1800 년대에는 사람이 실제로 죽었는지 결정하는 것은 오늘날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망한 후 3일 동안 면밀히 관찰해 잠이나 병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사진은 장례식장에 시신을 운반하고 장례 준비하기 전 3일 동안 기다리던 거실을 재현해 해놓았다.

장지에 도착했다. 아버지 묘에 합장하기 위해 묘를 파 유골함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경험 많은 묘지 인부가 유골함에 앉은 하얀 나비를 가리키며 어머니의 영혼이 오셨다고 나지막하게 일러준다. 유골함 위의 나비는 순간을 머물다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나비는 그리운 어머니였다.

멀리 떨어져 임종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들에게 흰나비의 모습으로 환생해 애틋함을 주고 훨훨 날아가셨다. 포근한 3월 초였지만 나비가 나오긴 이른 시기였다.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과정은 음향과 조명, 시청각자료를 통해서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살다 죽는다. 우린 시간에 갇혀 사는 유한한 존재다. 한국에는 임종체험장이 있어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상업적 행사가 있다고 한다.

텍사스 휴스턴에는 세계최대 규모의 죽음관련 박물관이 있다. 장례사 박물관은 장례회사를 운영하는 로버트 월트립에 의해 1992년에 설립됐다. 장례 산업과 역사자료를 수집해 전시와 교육을 하고 있다.

14개의 전시실에는 고대 이집트 방부 의식에서부터 미국 대통령들의 장례식, 장례에 사용된 관, 운구마차, 차량, 시신을 다루는 도구, 수의, 상복 등이 시대별로 분류돼 전시되어 있다. 유명인들을 추모하는 전시실에는 마이클 잭슨, 마릴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프랭크 시나트라, 짐 헨슨, 휘트니 휴스턴, 엘리자베스 테일러, 존 웨인, 로빈 윌리엄스 등의 장례식에 사용된 장례용품들이 전시되었다.

장례사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례 관련 박물관이다. 화려하고 정교하게 장식된 1972년식 토요타 크라운 영구차가 인상 깊었다.

LA카운티에서 발행한 마릴린 먼로의 사망진단서를 볼 수 있었다. 가족들이 모여 축제를 치르듯 하는 멕시코 명절 영혼의 날을 입체화한 전시실을 지나면 조상과의 영적 교감을 강조한 아프리카 가나의 목각조형도 있어 전세계의 독특한 장례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멕시코 영혼의 날을 입체화한 전시실.

2005년부터 바티칸의 협조를 얻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삶과 장례식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관람자가 바티칸에서 거행된 교황 장례식에 작접 참관한것 같은 실감나는 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는 가족단위의 관람객과 노인들의 모습이 숙연하고 진지했다.

박물관은 죽음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담하게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