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백악관 The White House and Museum of the Confederacy
1201 E. Clay Street, Richmond, VA 23219
샬러츠빌은 셰넌도어 국립공원 서남쪽 끝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구 4만7000명의 소도시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생가 몬티첼로와 토머스 제퍼슨이 설립한 명문 버지니아 대학이 있어 유명하다. 버지니아 대학은 대학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샬러츠빌 남쪽으로 70마일을 가면 버지니아 주도 리치먼드시가 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동맹의 수도이며 남부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가 머물던 남부동맹 백악관이 있는 곳이다. 한인도 많이 사는 워싱턴 DC 위성 도시 버크의 친구집을 출발해 100마일 떨어진 샬러츠빌로 이동했다.
샬러츠빌로 가는 29번 국도는 미국의 여느 시골과는 달리 인구밀도가 높은지 마을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샬러츠빌 시가지는 오르락 내리락하는 지형이었다. 언덕 위 다운타운은 낡고 길이 좁았다.
문제의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이 있는 해방 공원을 찾기 위해 지나는 젊은 백인 주민에게 길을 물었다. 눈을 피하며 상대를 안 하고 지나친다. 말을 못 알아 들은 걸까? 아니면 내가 동양인이라서 피하는 걸까? 상대를 잘못 택한 걸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일이 장소와 시류 탓인지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행지 첫 인상은 맞닥뜨리는 현지인들 태도에 따라 좌우된다. 도시를 떠날 때까지 우울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 이후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곳곳에 백인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글과 트럼프의 정치구호를 따라한 ‘미국을 다시 하얗게’라는 문구가 보이고 있다. 나치문양이 발견되는 등 인종차별적 반달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언론이 보도한다.
실제로 미국 시골길을 지나다 보면 나치독일 히틀러를 칭송하는 구호와 비슷한 ‘하일 트럼프’라고 쓰인 현수막과 픽업 트럭에 커다란 남부동맹기를 휘날리며 시위하는 장면들을 종종 본다. 미국의 전근대적 인종갈등 양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국경 장벽 건설과 테러 방지를 구실로 무슬림 입국 금지, 불체자 색출, 추방 등 이민자와 외국인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정책을 일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2016년 초 샬러츠빌 시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을 반대한 남부연맹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공원을 해방공원으로 개칭했다. 그리고 해방공원에 중앙에 우뚝 서있는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2017년 8월 12일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수천 명의 백인우월주의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 네오 나치 등이 ‘우파여 결집하라’는 기치 아래 나치구호를 외치며 폭력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에 맞서 민권단체 회원들이 ‘맞불 시위’를 벌이면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이 와중에 나치 추종자인 제임스 알렉스 필즈 주니어가 민권단체 시위자들을 향해 차량을 돌진해 1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다쳤다. 버지니아 주지사는 집회 해산을 명령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극우 백인우월주의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피하고 “여러 편에서 나타난 증오와 편견, 폭력의 지독한 장면을 최대한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공분을 샀다. 여야 정치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트럼프는 마지못해 폭력시위를 비판하고 자제와 국민 통합을 호소했다.
움츠려 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트럼프에 면죄부를 받고 공공연히 활동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샬러츠빌 폭동은 세계 민주주의의 심장부를 자칭하는 워싱턴 DC에서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터라 더 큰 충격으로 느껴진다. 2017년 1월 26일 활기 없는 샬러츠빌 다운타운 해방공원에 도착했다. 극우파의 아이콘 리 장군의 동상은 검은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70마일 남쪽에 있는 남부동맹의 심장부였던 남부 백악관이 있는 리치먼드시로 이동했다. 남부 백악관은 현재 남부동맹 관련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맹군의 자료는 물론 금기시 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상징물도 볼 수 있다. 왠지 인종갈등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었다.
흑인노예와 인종차별 등 그릇된 역사를 바로 인식하게 하고 국론을 통일케 하는 교육현장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 사진 / 신현식
23년간 미주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부장과 사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93년 도미 전까지 한국에서 광고사진 스튜디오 ‘옥슨’ 설립, 진도그룹 사진실장,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과 ‘마리끌레르’ 의 사진 책임자로 일했으며 진도패션 광고 사진으로 중앙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 성소수자 사진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6월 RV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년 10개월 동안 40여개 주를 방문했다. 여행기 ‘신현식 기자의 대륙탐방’을 미주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