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버나디노 허난데스 페이스북
“제 이름은 버나디노 허난데스, 올해 스물일곱살입니다. 멕시코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저는 6년 전 인생일대의 중대 결심을 했습니다. 미국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두 살 때 미국에 와 20년 가까이 살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과 프린터 한대, ‘토마스 모어스 매지션’이라는 소설책 한 권을 들고 멕시코시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저의 멕시코행을 반대하던 부모님은 그래도 자식이 걱정되셨는지 1000달러를 챙겨 주셨죠. 아버님이 그러시더군요. 이 돈을 미국으로 밀입국하는데 쓴다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사실 멕시코에는 저를 기다리는 사람도, 딱히 결정된 일자리도 없었습니다. 태어난 곳이지만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물가도 비싸 미국에서의 생활방식은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미국 대학의 졸업장만 있으면 쉽게 취업이 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영어와 스패니시, 이중언어가 가능한 제 장점을 살리기로 했죠. 다행히 한 기업의 통,번역 직원으로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먹고 살기 위해 미국으로 밀입국을 한 분들입니다. 중가주 샌타마리아 지역의 농장에서 일하며 자식들을 키웠죠. 저도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과외할동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죠. 부모님과 선생님은 항상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격려하셨죠.
하지만 대학 입학을 앞두고 저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탓에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멕시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멕시코국가도 몰랐고요. 다행히 부모님의 재정적 도움으로 대학(UC데이비스)은 졸업했지만 원하던 대학원 진학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일을 하며 대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는 취직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딱히 체류신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의 멕시코행 결심은 이렇게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어엿한 통·번역 업체의 대표입니다. 창업을 한 거죠. 고객사중에는 글로벌 기업들도 있습니다. 미국 출장도 자주 옵니다. 오히려 미국에 살 때보다 더 많은 지역을 다닙니다. 미국을 떠난 지 5년 만이던 지난해 첫 미국출장 때가 생각나네요. 비즈니스 비자를 받아 플로리다 공항을 통해 입국 했는데 이민세관국 직원이 묻더군요. 미국에 왜 왔냐고요. 사업때문에 왔다고 했죠. 컴퓨터에 저의 불법체류 사실이 있었는지 2차 심사대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불법체류 당시 어디에 살았는지 등 꼬치꼬치 캐 물었습니다. 결국 입국은 허락됐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부모님은 믿을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부모님은 두 번째 미국 출장 길에 뵈었습니다. LA공항을 통해 입국해 앰트랙을 타고 샌타마리아로 갔죠. 집에 도착하니 큰 글씨가 눈에 띄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요. 그러나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곳은 이제 더 이상 저에게 집이 아니었거든요.
지금 저는 나름 성공을 거뒀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캐나다에서 대학원 과정도 마쳤습니다. 사실 대학원 졸업 후 캐나다에 정착할 기회도 있었지만 저는 멕시코를 택했습니다. 미국과 멕시코, 양쪽의 언어와 문화를 모두 잘 아는 제게는 멕시코에서의 기회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올 11월엔 새로운 사업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통·번역 서비스 업체입니다.
한 조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미국에서 성장했지만 멕시코로 돌아간 젊은이(18~35세)들의 숫자가 5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처럼 자발적으로 귀국한 사람들은 ‘꿈을 꾸는 다른 사람들(los otros dreamers)’이라고 부른답니다. 저의 얘기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젋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합니다.
성공은 본인 앞에 놓인 장애물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기사는 LA타임스에 ‘미국에서 성장한 불법체류자가 멕시코에서 성취한 어메리칸드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버나디노 허난데스의 이야기를 일인칭 화법으로 재구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