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뭘 볼까. 진심 고민될만한 주말이 아닐 수 없다. 여름 대목을 맞아 줄줄이 개봉해대던 블록버스터 대작들이 잠깐 잠잠한 틈을 타, 규모는 고만고만하지만 재미만큼은 솔솔한 영화 세 편이 동시에 개봉한다. 가족과 함께 볼만한 동심 가득한 어린이 영화도, 웃음과 감동을 두루 갖춘 실존 인물 스토리도, 거친 욕과 야한 농담이 가득해 보는 이의 배꼽을 잡게 하는 성인용 코미디 애니메이션도 있다. 취향 따라 볼만한 이번 주 신작 개봉 영화를 등급별로 소개한다.
“아이들은 두고 오세요”
‘섹드립‘ 만렙, 제대로 ’19금‘ 애니 : 소시지 파티(Sausage Party) R등급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발칙하고, 대담하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지만, 이 정도면 ‘약 빨고‘ 만들었다 해도 과하지 않다. 섹드립, 욕드립, 약드립이 난무하고 심지어 잔혹하기까지 하다. 근데, 그게 너무 웃기다. 물론, 이 정도 수위를 낄낄 웃으며 받아들을 수 있는 내공이 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어머어머, 잔인해, 부끄러워‘ 할거면 애당초에 볼 생각을 접으시길.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만 보고, 혹시라도 자녀들을 데려가서 같이 봤다가는, 잡혀갈지도 모른다. 그 만큼 ‘쎄다‘. 진짜 쎄다.
영화 속 배경은 그로서리 마켓. 진열대에 놓인 모든 식품과 물건은 다 말을 하고 움직일 줄 안다는 설정이다. 연인 사이인 소시지 프랭크와 핫도그 빵 브렌다를 비롯, 허니 머스타드, 포테이토 칩, 베이글 빵, 미니 당근 등 그로서리의 모두가 꿈 꾸는 건 천국과도 같다는 마켓 밖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지만, 사실 그 밖은 무시무시한 칼과 펄펄 끓는 물이 산적해 있는 무서운 세계라는 게 이야기의 골자다. 인터넷 상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의 예고편 역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근데, 알고보니 이게 다 ‘쉴드‘ 였다.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다. 이 설정 안에서 미쳐 날뛰는 식품들의 온갖 거친 욕설과 야한 농담이 핵심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뒤에 교묘히 숨어, 실사 영화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수위의 장면들을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소시지와 핫도그 빵의 격렬하고 요란한 정사신은 기본 옵션 정도로 깔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다.
‘디스 이즈 디 엔드‘ ‘인터뷰‘ ‘네이버스‘ 시리즈 등을 줄줄이 내놓으면서, 어느덧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 ‘장르‘가 돼 가고 있는 배우 세스 로건표 코미디다. 그는 진정 시대를 잘 만난 천재 겸 ‘상돌아이‘가 분명하다.
“이렇게 웃퍼도 되나요”
메릴 스트립, 또 한 번의 ‘미친 연기‘ :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 PG-13 등급
참 ‘웃프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다.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는데다 돈도 많아 손 벌리는 사람마다 넘치게 쥐어 주는 데, 하필 음악적 재능이라곤 ‘1’도 없다. 근데 본인이 그걸 전혀 모른다. 그래서 음반도 만들고, 콘서트도 연다. 엄청난 비극이다. 근데 또 세상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게, 그렇게 귀엽고 웃기다. 주변 사람들도 다 ‘오냐 오냐‘ 한다. 놀리는 건 아니다. 자기돈 쓴 데는데 막을 이유도 없고, 그 순수한 마음과 자애로운 성품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모든 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메릴 스트립) 얘기다. 플로렌스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1940년대 초반 뉴욕의 저명한 클래식 음악 후원자였다. 베르디 클럽이라는 음악 동호회를 만들고, 토스카니니를 비롯한 뉴욕의 거장들에게 늘 거액을 기부하곤 했던 ‘큰 손‘이다. 그의 곁에 있는 건 배우 출신 젊은 남편 베이필드. 근데 이 둘의 관계가 신기하다. 베이필드는 누구보다 플로렌스를 아끼고 사랑하며 챙겨주지만, 따로 여자친구가 있다.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관계다. 영화는 플로렌스가 카네기 홀에서 3000여 명을 모아놓고 독창회를 열기로 하며, 이야기는 한층 흥미진진해진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를 보는 재미는 역시 ‘연기의 신‘ 메릴 스트립의 미친 존재감이다. 뮤지컬 영화를 몇 편이나 해 왔을 만큼 빼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이지만, 시치미 뚝 떼고 기가 막힌 음치 연기를 해댄다. 하지만 그게 우스꽝스럽지 않고 그저 사랑스럽다. 엉망진창 노래 속에 담긴 진지함과 해맑은 마음을 표현해내는 깊이 있는 연기의 힘이다. 또 하나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챙길 것이 유력하다. 능글맞지만 진심 어린 연기를 해 보이는 휴 그랜트도 훌륭하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듯한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싱숭생숭해질 정도. 그러나 진짜 압권은 피아니스트 맥문 역할로 영화에 웃음과 생기를 더하는 사이먼 헬버그. 그의 미묘하고도 진심어린 연기가 영화 내내 반짝반짝 빛난다.내년도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로 손색이 없다. 참고로, 영화 속 모든 피아노 연주도 직접 했다고 한다.
“거 참, 묘하게 감동적이네“
남녀노소 모두 동심의 세계로 : 피츠 드래곤(Pete’s Dragon) PG 등급
1977년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섞어 만들었던 ‘피터의 용‘을 100% 실사로 다시 만들었다. 주인공은 어릴 적 부모님과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로 고아가 된 소년 피트(오키스 페글리). 부모를 잃고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위기를 맞게 된 피트는 우연히 마주친 용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다. 덩치는 크지만 순하고 친근하기 그지없는 용과 친구가 된 피트는 그대로 인간 세계와 떨어진 채 숲을 집 삼아 살아간다. 그러던 피트를 산림관리원 그레이스(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우연히 발견한다.
숲을 사랑하는 그레이스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들은 산 속 깊은 곳 용 이야기를 믿지 않았지만, 피트를 통해 모든 게 사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데려간 피트를 찾기 위해 애쓰던 용은 인간들에게 정체가 발각돼 상처를 입고 붙잡히게 된다. 피트와 그레이스 역시 여기에 맞서 용을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딱 초등학생들이 보면 적당한 수준의 동화적 이야기지만, ‘피츠 드래곤‘엔 이를 넘어서는 뭉클한 감동이 있다. 피트와 용의 끈끈한 우정, 부모를 잃은 피트에게 또 다른 가족이 돼 주는 그레이스,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날아오는 용의 힘찬 날갯짓 등이 모두 흡입력 있게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마음을 담아,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듯한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의 공도 크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그레이스의 아버지 역으로 등장해 깊게 패인 주름 속 감출 수 없는 존재감을 뽐내는 로버트 레드포드 또한 영화에 힘을 싣는다. 매서운 눈과 수염에 징그러운 비늘로 뒤덮인 무서운 용이 아니라, 보드라운 초록빛 털이 북슬북슬한 귀여운 용을 등장시킨 점도 플러스다.
글 / 이경민 기자
‘겅민양의 돈내고 볼만해?’ 는 영화&엔터 전문 이경민 기자가 목숨걸고 추천하는 금주의 핫 공연 &이벤트와 화제 인물을 다룹니다. lee.rachel@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