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타지마할 뒤에 숨은 저주가 있다. 무굴황제 샤자한이 아내 뭄타즈마할을 위해 지은 영묘. 왕비는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찢어지는 슬픔에 황제는 밤새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었고 괴팍한 성격으로 변해 갔다. 국력을 탕진하며 8년을 걸려 타지마할을 완성하고는 더 이상 이런 아름다운 영묘를 짖지 못하도록 충성스러운 건축사 수십 명을 처형, 2만 명 인부의 오른 손목을 잘라서 여기에서 타지마할의 저주가 시작되었다.
타지마할 완공 4년 후 아들 아우랑제브는 유혈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아버지 샤자한을 타지마할이 멀리 보이는 아그라 성의 무삼만 버즈 포로의 탑에 유폐시켰다. 아들은 야무나강 물줄기도 막아 아버지를 괴롭게 했고 냉혹하게 대했다. 샤자한은 8년을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왕비 뭄타즈를 그리다가 끝내 거기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타지마할의 저주는 계속되어, 아우랑제브는 집권 후 비이슬람교도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이후 무굴제국이 전역에 대규모 반란으로 분열되고, 급기야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 무굴제국의 종말을 가져왔다.
웅장한 방어 시설을 자랑하는데 현재 아마르 싱 게이트를 입구로 사용한다. 황제가 출입하던 백색 대리석으로 된 델리 게이트가 있는데 지금도 델리 게이트를 서쪽 지역은 인도 정부의 군사 시설로써 사용되고 있다.
붉은 아그라 성은 야무나강을 따라 타지마할에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20미터 높이의 붉은 사암의 성채, 성벽과 해자 등 악바르 대제가 건축 시작 8년 만에 완공, 후손들이 증축했다. 무굴 제국의 황제, 황족들이 1638년 델리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거주했다.
아그라 성내에는 화려한 건축물 500여 개가 있었지만, 해체되거나, 파괴되어 지금은 30여 개의 건축물만이 보존되어 있다. 힌두와 아프간 양식이 조화된 자한기르 궁전이 제일 큰데, 여름에는 시원한 분수와 물이 흐르고, 겨울에는 따듯한 물을 순환해 따뜻한 바람이 나오게 되어 있다. 자한기르의 부인 여걸 누르 자한이 거처로 사용하기도 했다.
아버지 샤자한이 유폐되었던 하얀 대리석의 무삼만 버즈는 포로의 탑이라기보다 궁전으로 불러야 더 어울리는 화려함을 갖추고 있다. 새하얀 대리석에 정교한 조각과 상감, 금박으로 장식, 대리석으로 만든 분수와 태양열로 데워진 물이 쏟아지는 시설도 있다.
크고 작은 분수와 건물 사이를 흐르는 야무나강과 연결된 물줄기,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순환된 물이 정원으로 흘러가게 한 과학적인 디자인이다.
강 건너에는 샤자한이 타지마할을 디자인할 때 영감을 준 영묘가 있다. 무굴시대의 보석인 아기 타지라고 불리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인데 아름다운 디자인에 섬세한 대리석 조각을 자랑한다. 자한기르의 여걸 왕비 누르 자한의 아버지를 위한 영묘이고, 누르 자한의 남동생의 딸이 바로 뭄타즈 마할이다.
글/사진 시내산 김정선 (세계인문기행가)
시내산 김정선 씨는 7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대학 교수로 10년, 90년대에 교육연구 회사를 세워 20년 이상 미정부 K-20 STEM 교육프로그램 연구 사업에 기여했다. 연구를 위해 미국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녔고, 은퇴 후에도 세계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문학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