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 Mission San Juan Capistrano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은 기독교 전파의 종교적 의미 외에도 캘리포니아의 문화, 정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만년 전부터 원주민들이 살았고 AD 1700년대에 최초의 유럽인인 스페니쉬들이 들어왔으며 이후 독립 멕시코에 의해 지배되었다가 멕시코 전쟁 이후 미국에 합병됩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포르투갈과 함께 경쟁적으로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던 스페인은 남미에서 북미로 그 세력을 넓혀 나갑니다.

스페인은 미 대륙의 식민지화 일환으로 미션을 세우는데 미션마다 성직자와 군인을 함께 파병하였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고 군인과 신부가 함께 미션을 담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캘리포니아 최남단 샌디에이고에서 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총 21개의 미션을 만듭니다. 각 미션은 말을 타고 하루에 당도할 수 있게 거리를 두었습니다. 미션의 목적은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과 스페인의 국민으로 만들어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하려는 것이었지요.

각 미션마다 신부 1명당 6명의 군인들이 주둔하였는데 이들은 미션에서 각기 자급자족해야 했습니다. 원주민들과의 마찰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미션 생활을 영위했는데요.

신부와 군인들은 종교 전파와 방위 업무 외에도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목축과 농사를 비롯하여 건축 및 대장장이 역할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미션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종교 지도자인 신부와 군인들 그리고 원주민들이 함께 공동 생활을 하면서 예배를 하고 농사도 짓고 모든 행사를 같이 하게 됩니다. 미션마다 갖추어진 종은 아침 예배와 기타 시간대를 알려주는 목적이었습니다.

1769년 시작된 캘리포니아 미션은 멕시코가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점점 폐지되거나 재산이 개인에게 불하되어 그 역할을 중단하게 됩니다. 1845년 멕시코 주지사 피오 피코(Pio Pico)는 이곳 미션을 자신의 매제인 포스터(Foster)에게 헐값으로 넘겨 개인 소유가 됩니다. 하지만 1865년 미합중국에 캘리포니아가 합병되면서 링컨 대통령이 미션을 캐톨릭 교회에 환원합니다.

스페인의 미션은 기독교 전파와 새로운 문화 전달에 큰 역할을 하였지만 식민지 지배를 위해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억압하고 강제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스페니시들은 유럽의 농업 기술과 작물들 그리고 말, 소 , 당나귀, 염소 등을 들여 와서 목축을 하여 초장이 황폐해지면서 전통적인 식량을 거두기 힘든 원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미션에 와서 생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건너온 병균에 면역이 없던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질병에 걸려 사망하게 되는데 1770년대 65,000 명으로 추정되는 원주민의 숫자는 1830년 약 17,000으로 74%나 그 숫자가 줄어 듭니다.

 

 

1776년에 건축된 미션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는 캘리포니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2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복구와 보존 노력을 통하여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 미션에는 몇가지 기념할만 한 전통과 건축물이 있습니다. 전통으로는 이곳에 매년 찾아오는 제비들을 환영하는 ‘제비 축제’입니다. 해안 절벽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던 제비들이 이곳 성전에 정착을 하면서 매년 때를 맞춰 돌아옴으로써 이곳 주민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미션을 건립하고 캘리포니아 미션의 수장 역할을 한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a) 신부를 기념하는 예배당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이곳을 생활 터전으로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었던 세라 채플(Sera Chapel)은 그 아름다움과 엄숙한 분위기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미사 집전 제단 벽에 설치된 황금빛 구조물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들여온 것인데 사이즈가 커서 건물 높이와 넓이를 구조물에 맞춰 재건축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미션과 이웃하는 미션 바실리카(Mission Bacillica) 에서 미사를 집전합니다.

미션 한쪽에는 거대한 벽면만 남아있는 더 그레이트 스톤 처치(The Great Stone Church)라는 석조 성전이 있습니다. 1797년 새로운 성전의 필요성을 느꼈던 미션 사람들은 9년에 걸쳐 멋진 석조 건물을 완성합니다. 하지만 축성한 대성전은 1812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으며 그 이후 다시 성전을 재건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복원 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예배를 드리던 40명의 성도가 사망하는 대참사였는데 지진에서 살아남은 4개의 종은 성전에 아직도 보존이 되어있습니다.

1900년대 이후 이곳의 역사적 종교적 가치를 발견한 많은 자원자들에 의해 이곳에 대한 보존 열기와 노력이 지속되었고 현재는 매년 수십만명이 찾는 교육, 문화, 역사의 배움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션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는 기차 여행이 가능한 관광 명소로 주위에는 소문난 수많은 식당과 골동품점 쇼핑센터가 있으며 미션 주변으로 형성되었던 옛 타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김인호 (하이킹 전문가)
김인호씨는 미주에서 활동하는 등반, 캠핑, 테마 여행 전문가로 미주 중앙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미디어에 등산 칼럼을 연재하면서 초보에서 전문가까지 미주 한인들에게 유용한 실전 하이킹 정보를 꾸준히 소개해오고 있다.
저서로 ‘남가주 하이킹 105선’ ‘하이킹 캘리포니아’가 있다.